[인간 행동의 진화] 여자도 싸우는가?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2021. 6.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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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는 다른 싸움의 방식이 진화했다. 바로 여성의 공격성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여자도 싸우는가?' 좀 이상한 질문이다. 여자도 싸우냐고?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동물은 누구나 싸운다(혹은 도망치거나). 암수가 다를 리 없다. 그러나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여성은 남성보다 덜 싸운다. 2019년 기준으로 폭력과 관련된 강력범죄는 총 31만 건이 있었는데, 그중 25만 건이 남성 가해자다. 여성 가해자는 5만6천 건인데, 18.1%에 불과하다. 살인이나 강도, 방화는 남성 편향이 더 심하다. 같은 해 총 1,050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여성이 저지른 살인은 155건에 불과하다. 강도나 방화도 비슷한 성비를 보인다. 종류를 막론하고 범죄의 80%는 남성이 저지른다. 죄수 1000명이 수감된 교도소가 있다면, 935명이 남성, 65명이 여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범죄는 남성의 전유물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착한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착한 것일까? ‘착함’에 대한 각자 의견이 다르니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일단 사전을 펴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은 착하다’라는 말은 ‘여성은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일까? 젠더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비난을 받기 쉬운 말이지만, 일단 넘어가자. ‘여성도 남성처럼 범죄를 자주 저질러야 양성평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일단 ‘여성이 착하다’라는 말과 ‘여성이니까 착해야 한다’라는 말은 분명히 다르다. 게다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저지르는 범죄도 있긴 한데, 감염병 예방법이나 건강기능식품법, 공중위생법, 식품위생법, 의료법, 청소년 보호법, 학교보건법과 관련된 범죄다. 어떤 영역에서는 여성의 범죄도 남성의 범죄를 능가하고 있으니, 이런 지겨운 논쟁은 슬쩍 넘어가자.

아무튼 강력범죄만 두고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착하다’. 낮은 범죄율을 ‘착함’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외삽이지만, 분명 그렇다.

○ 

공격과 싸움

사실 현대 사회의 형법 체계에서 ‘강력범죄’로 간주하는 행동은, 자연의 세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정상 행동’이다. 강력범죄는 대개 대인 간의 싸움인데, 그 결과는 죽음 혹은 상해, 성폭력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종 내 투쟁은 적합도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 행동 전략이다. 평화롭게 보이는 공원에 가보자. 수많은 곤충과 미생물, 시궁쥐, 길고양이 등이 끊임없이 폭력과 살해, 강간을 저지르고 있다. 하나도 평화롭지 않다.

찰스 다윈의 불도그,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의 세계는 검투사의 쇼와 같다. 생물은 싸움에 대처하도록 진화했다. 강하고 민첩하고 재치가 있는 것은 살아남고 또 싸운다. 약하고 어리석은 것은 밀려나고 강하고 표독스러운 것은 생존한다. 삶은 연속적인 난투다.’

인류가 침팬지와 다른 길을 걷기로 한 이후에도, 대부분의 시간은 이런 무법천지였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의롭고 공정하며 안전한 세계에 살고 있다(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종 내 싸움은 자원 확보 가능성과 번식 가능성을 두고 벌이는 일종의 신호게임이다. 승리하면 이익이 막대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단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체구가 커야 한다. 부족한 자원을 근육에 할당하려면 무리수가 따른다. 수컷은 테스토스테론을 통해서 체구를 크게 키우는데, 덕분에 일찍 죽는다. 남성의 신체는 여성의 신체보다 강하지만, 7년의 수명을 희생한 대가다. 만약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체구와 체력 대신 긴 수명을 택하겠다. 

그렇다면 암컷, 즉 여성이라고 경쟁하지 않을까? 그럴 리 없다. 다만 여성에게는 긴 수명, 안전한 삶이 주는 이득이 더 크기 때문에 신체적 경쟁을 통한 군비경쟁은 별로 진화하지 않았다. 성 간 공격성의 차이는 차별적 이득과 비용이 균형을 이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대신 여성에게는 다른 싸움의 방식이 진화했다. 여성의 공격성이다. 

분노 혹은 두려움의 성차

싸움과 관련된 두드러진 성 간 차이는 바로 불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흥미롭게도 여성의 분노는 남성만큼이나 뜨겁다. 과거에는 여성이 잘 분노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었다.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분노, 예를 들어 밥상을 뒤엎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고성을 고래고래 지르는 방식의 분노는 남성에게 더 흔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분노의 성차는 없다. 심지어 일부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 분노한다. 다만 쉽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싸움과 관련된 두드러진 성 간 차이는 바로 불안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불안장애를 많이 앓는데, 일반인의 불안 수준도 상당한 성차를 보인다. 즉 여성은 남성보다 두려움을 더 잘 느낀다. 이런 차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는데, 분명 양육의 결과는 아니다. 놀이 공원에서 귀신의 집을 관리하는 직원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미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쉽게 불안해하고, 더 쉽게 두려워하고, 더 쉽게 놀란다. 아마도 포유류 암컷의 배타적인 양육 선택압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인간 포유류의 상당수는 암컷이 수컷보다 더 잘 놀라고, 더 쉽게 두려워한다. 

그래서 여성은 분노를 표현하는 데는 더 신중한 것이다. 두려움의 역치가 낮기 때문이다. ‘화를 벌컥 냈다가 반격을 당하면 어쩌지?’라는 식이다. 반격 가능성이 없는 대상, 예를 들어 유아나 애완동물 등에 대한 분노 행동은 남녀가 다르지 않다. 사실 남성도 나이에 따라 두려움의 수준이 달라진다. 기혼 남성은 미혼 남성보다 강력범죄를 훨씬 덜 저지른다.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은 결혼 이후에 감소하며, 덧붙여서 자식을 낳으면 옥시토신도 높아진다. 갑자기 더 곱고 바르며 상냥해진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임질 것이 생기면, 두려움도 커지는 법이다. ‘왕년의 나라면 얼러붙었겠지만, 우리 애들을 봐서 참는다’라는 아빠의 말은 비겁한 변명이 아니다.

○ 누구에게 공격성을 보일까

수컷, 즉 남성의 공격성은 젊은 시절에 두드러진다. 무모하고 도전적인 공격성은 일종의 짝짓기 전략인데, 절반은 경쟁자를 압도하려는 것이고, 절반은 잠재적 짝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일부일처제가 진화하면서 혼인 이후의 공격성이 가진 '이득/비용'의 비가 급감했다. 싸워서 승리해봐야 추가로 얻을 것이 없다. 결혼반지가 끼워진 남성의 손은 싸움질이 아니라 쟁기질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성의 싸움은 도리어 맹렬해졌다. 일부일처제하에서는 여성도 ‘바람직한 짝’을 찾는 선택압이 높아진다. 한번 맺어지면 ‘이론적으로는’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여성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여성 과시, 여성 콘테스트가 시작된 것이다. 

일반적인 영장류와 달리 인간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의 여러 신체적, 정신적 자질을 짝에게 과시한다. 그리고 경쟁자의 자질을 깎아내린다. 주로 외모와 정절에 대한 공격이다. 여성은 사회적 관계와 험담을 통해서 수동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높다.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경쟁자는 보통 두 부류료 나뉜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 많은 남성을 만나는 여성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언어적 폭력 수준이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유독 두 종류의 여성에 대한 욕설은 잘 발달되어 있다. 굳이 여기서 예는 들지 않겠다. 

 여성 간 신체적 폭력

 

그렇다면 여성은 신체적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여성이 저지른 폭행은 4만736건, 상해는 1만497건으로 집계된다. 

여성의 폭력은 대개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데, 주로 15~24세 여성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대개 친구 혹은 지인이다. 모르는 사람의 뒤통수를 벽돌로 내리치는 식의 폭력은 여성에게 아주 드문 일이다. 종종 여성 간의 폭력은 ‘친했던’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다. 연구에 따르면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십 때문에 성적인 평판이 손상되었을 때다. 누군가 자신을 문란한 여성이라고 욕하면, 가만있을 수 없다. 더 이상의 소문(사실이든 아니든) 확산을 막기 위해서 일기토에 나서는 것이다. 둘째, 파트너를 둘러싼 경쟁이다. 잠재적인 파트너 경쟁 혹은 이미 맺어진 남성을 둘러싼 경쟁이다. 만약 젊은 여성 둘이서 백스트리트 파이팅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라고 짐작해도 좋다.

그러면 이런 여성 간 폭력성은 언제 더 심각해질까? 바람직한 파트터 후보 남성의 숫자가 줄어드는 경우다. 여성 간 폭력은 남녀 비가 낮은 도심지에서 두드러진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농촌에 비해 여초 현상이 심한데, 특히 젊은 연령대에서 이러한 성비 역전이 심하다. 미국의 경우 흑인 밀집 지역에서 여초현상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적지 않은 남성들이 교도소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비가 1을 살짝 넘는 상황이어도 마찬가지다. ‘바람직한’ 남성은 늘 공급 부족이다.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일부 도시 빈곤 지역에서는 이러한 여성간 공격성이 모계를 통해 전수된다. 문화인류학적 조사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흑인 거주 지역 젊은 여성의 상당수는 자신의 남성을 다른 여성으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체적 폭력을 불사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체적 공격에서 승리하면 여성 집단 내에서 위계가 높아졌고, 높은 위계를 가진 여성의 ‘남친’은 다른 여성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이런 ‘적극적’ 문화는 어머니로부터 딸로 전수됐다.

 착한 행동이 악한 행동보다 더 이득이 되는 사회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원이 부족하면 싸우는 법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덜’ 싸우는 것은 보호해야 할 아이가 있기 때문이고, 결혼한 남성이 ‘덜 싸우는’ 것도 역시 보호해야 할 처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강력한 싸움 능력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지만, 막상 혼인을 하고 나면 남편의 싸움을 극구 말린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의 분노 수준은 이미 비등점을 넘고 있는데, 분명 자원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아파트든, 일자리든, 결혼 기회든, 자식을 낳을 여건이든 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곱고 바르며 상냥한’ 사람이 많은 사회를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착한’ 행동을 독려하자면, ‘착한’ 행동이 ‘악한’ 행동보다 더 큰 이득이 되는 사회적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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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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