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기록과 기억..부활하는 영웅들
[앵커]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을 맞아 발자취를 짚어보는 연속 보도, 오늘(12일)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꽃다운 나이,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대부분은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최근 사료 연구 등을 통해 330여 명의 이름과 행적이 늦게나마 확인됐습니다.
선재희 기잡니다.
[리포트]
충남 부여군 은산면의 한 시골 가옥.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인 박영희 선생의 생가입니다.
[유희정/박영희 선생 가문 종부 : "이 집은 박영희 장군이 나시고 19세까지 사시다가 이세영 선생을 만나셔 가지고 중국으로 망명하셨습니다."]
졸업 후 교관을 지내기도한 박영희 선생은 이후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고, 1930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희정/박영희 선생 가문 종부 : "유해가 없어요. 찾지를 못했습니다. 옛날에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문만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박영희 선생 같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은 3,500여 명에 이릅니다.
나이는 대부분 15세에서 30세.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망명길에 오른 젊은이들입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 : "낮에는 열심히 밭 갈고 농사 짓고 하면서 밤에 흔히들 주경야독이라고 하잖습니까. 훈련도 받고, 정신교육도 받고, 군사교육도 받고."]
최근 뒤늦게나마 이름과 행적이 확인된 졸업생은 330여 명.
졸업생 가운데 김원봉과 윤보한 등은 의열단에 들어갔고, 이병철 등은 서로군정서에, 이영선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합니다.
엄준과 유득신은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모금하다 경찰에 체포됐고, 허승환은 연해주에서 항일 투쟁을 벌이다 1938년 총살당합니다.
하지만 졸업생 중 3천 명 이상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 속에 묻혀 있습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 : "잊혀진 수많은 신흥무관학교 생도들. 이 사람들이 바로 독립전쟁의 참다운 영웅들 아니겠습니까. 소중한 한 분 한 분을 우리가 유해를 발굴하듯이 찾아내는 게 역사학자의 또 다른 책무가 아닐까."]
비극의 시대, 기백만으로 싸우다 스러져간 어리거나, 또는 젊었던 신흥무관학교 생도들의 이름을 찾아내는 노력은 후손의 책무입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촬영기자:김제원/영상편집:한효정
선재희 기자 ( a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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