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걸작? 반세기 뒤 보았더니 민망할 뿐 [김성호의 요런책]

김성호 2021. 6. 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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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Yo!Run!Check! 13] J. P. 돈리비,  <진저맨>

[파이낸셜뉴스] 시간은 냉혹하다.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가지 않고 비할 바 없는 권세도 십년을 버티기 어렵다. 우러러보던 민족사학은 편협한 것이 되었고, “기술은 사오면 된다”던 어느 회장님의 철학도 단견으로 결론난지 오래다.

예술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 때 훌륭하다 극찬 받던 작품도 시간이 흐른 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후진 것 되기 일쑤다. 그제야 알게 된다. 시간만큼 냉혹한 관객이며 평론가는 없다고.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어느 예술가가 서명한 변기가 2017년 전시회에 출품됐다면 귀퉁이 단신기사로도 실리지 않았겠지만 마르셀 뒤샹이 1917년 출품한 ‘샘’은 당대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필요한 때 필요한 자리에 있었던 덕분이다. 이제 그 필요가 다했으므로, 변기는 다시 변기의 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한때 전위적이던 것이 그 쓰임을 다하고 나면 본질만 남게 된다. 샘의 남겨진 본질은 변기일 뿐이고, 시의성이 사라진 다른 많은 예술도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게 된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역할을 다한 뒤 있을 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온 산을 물들인 단풍이 흙바닥에 떨어지듯.

▲ 진저맨 책 표지 ⓒ 작가정신
생강머리 미국인의 아일랜드 유학기

여기 한 권의 소설이 있다. 2차 대전 이후인 1955년 집필된 작품으로, 제목은 <진저맨>이다. 붉은 빛 생강머리를 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대학생이 더블린으로 유학을 와 벌이는 좌충우돌의 시간을 다뤘다. 당대 평론가들은 이 소설을 평하며 제임스 조이스와 헨리 밀러, 사무엘 베케트, 프랑수아 라블레 같은 유명 작가를 불러왔지만 반세기가 지난 뒤 어느 누구도 이들 가운데 <진저맨>의 J. P. 돈리비를 놓아두지 않는다.

<진저맨>은 영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잊혀진지 오래다. 물 건너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2013년 작가정신이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하기 전까지 <진저맨>을 읽고 싶어 했을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넉넉잡아도 전 국민 가운데 100명이 채 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작가정신은 이 책을 <위대한 개츠비>와 엮어 ‘전후의 불안과 허무’를 반영한 작품이라 말한다. 옮긴이 김석희는 그 스스로 이 책을 조이스와 밀러, 베케트와 엮는 게 적절치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굳이 그들을 다시 소환한다. 소설이 충분히 훌륭했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언급이란 걸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어째서 개츠비와 조이스, 밀러, 베케트와 달리 이 소설은 기억되지 못했을까.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저맨>의 작가 J. P. 돈리비. fnDB.

이해되지 않으면 대단하게 여겨졌던 시대

주인공은 시배스천 데인저필드란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스물일곱의 데인저필드는 트리니티칼리지 법과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만 학업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아내 매리언과 딸 펠리시티를 두고도 술과 다른 여자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무책임한 인간이다. 무책임하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고도 책임을 아내에게 돌린다. 술에 취해서는 바텐더와 다른 손님들까지 두들겨 팬다.

인간관계도 형편없다.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 술값으로 쓰기 바쁘다. 밀린 집세는 갖은 핑계를 대며 내지 않고 버틴다. 머릿속엔 그저 술과 섹스뿐이다. 좋게 말해 호색한에 난봉꾼이고 나쁘게 말하자니 지면에 실리지 않을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진저맨>이 남다른 위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형식에 있다.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서술방식은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데, 합리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은 흐름이 이 책을 다른 작품과 달리 느끼게 한다. 자주 주어가 빠지는 문장이야 그렇다 쳐도,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를 쉽게 해독할 수 없도록 써내려간 부분은 도대체 장점으로 보기 어렵다. 아마도 서른 곳 넘는 출판사에서 퇴짜를 놓은 이유가 아닐까 싶지만 되레 성공의 이유가 됐으니 세상이란 알다가도 모를 곳이다.

마약중독과 폭음에 찌든 청춘은 언제나 시대적 억압을 반영하는가. 전후 미국의 불안을 다뤘다고 평가됐던 <진저맨>은 과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던 것일까. 사진=픽사베이.

찬사와 비난, 누군가는 거짓을 말한다

당대 평론가들은 이 책이 ‘전후의 불안과 허무 가운데 개인이 느끼는 절망과 무기력함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사람마다 일부 차이는 있다지만 이것과 다른 이유로 좋은 평가를 내린 사례는 찾지 못했다. 데인저필드가 제 옆에 살고 있다면 그 삶의 단 한 구석도 용납지 않았을 사람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가져다 대며 극찬한 이유가 이 모든 일탈이 전쟁이 낳은 인간형의 표상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애인을 패고 술과 마약에 찌든 청춘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으로 묘사한 작품이 나온다면 그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문제에 대한 반작용을 표현한 것이 될는지. 그저 동네 술집에서 사고를 치고 집에서 폭력을 행사할 뿐이지만 폭주하는 자본주의와 파괴되는 지구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게 분명하다.

책을 읽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해외 도서사이트를 죄다 돌아다닌 결과 이 책만큼은 별점의 편차가 큰 작품도 많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충분한 이유를 들어 이 소설의 ‘가치 없음’을 역설했다. 문장이 좋지 않고, 형식의 특이함은 그저 특이하기만 할 뿐이며, 여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고, 뚜렷한 주제의식도 없다는 등이다. 반면 소설을 칭찬하는 이들은 죄다 위에 언급된 한 가지 이유를 들어 찬사를 쏟아놓는다. 나는 훌륭한 독자가 이중 어느 쪽을 취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때로는 시대를 초월해 인정받는 걸작이 있지만, 과거의 명성을 절반도 찾지 못하고 사라지는 작품도 맞다. <진저맨>을 2013년에야 번역 출판한 출판사는 <진저맨>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사진=픽사베이.

■김성호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요런책'을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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