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로 변한 '펜트3', 언제까지 '순옥적 허용'을 감내해야 하나

정덕현 칼럼니스트 입력 2021. 6. 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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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3' 쌍둥이가 도대체 몇 명이야..이 상대적 박탈감을 어찌할꼬

[엔터미디어=정덕현] 여지없이 로건 리(박은석)가 죽자 그의 형 알렉스(박은석)가 등장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알렉스의 등장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소 일색이다. 보통 이런 깜짝 등장은 '반전의 충격'을 주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반전의 충격은 없었다. 이미 시즌3까지 방영되고 있는 SBS '펜트하우스'에서 죽은 자가 돌아오는 일(특히 쌍둥이 설정은)은 일상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즌3 첫 회에 로건 리가 주단태(엄기준)에 의해 폭사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도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박은석이 다른 모습으로 또 부활할 것이라고 예상을 내놨었다.

아마도 같은 로건 리와는 다른 느낌으로 알렉스를 등장시키기 위해서였는지, 너무 과한 분장을 시켜 놓은 것이 폭소를 터트리게 만든 또 다른 이유였다. 레게 머리를 하고 얼굴에도 잔뜩 문신을 새겨 넣은 알렉스를 보며 시청자들 중에는 KBS '개그콘서트' 사바나의 아침 심현섭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좀 더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시청자들 중에는 이런 쌍둥이에 가까운 형이 있으면 애초 민설아(조수민)가 굳이 로건 리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입양됐다 파양될 이유가 있었나 하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반전이 반전으로 작동하지 않고 폭소를 유발하게 됐다는 건 '펜트하우스3'라는 세계가 가진 엉성함을 방증한다. 심수련(이지아)의 쌍둥이 나애교(이지아)가 등장했던 쌍둥이 설정 하나도 사실 믿기 힘든 일인데, 연달아 쌍둥이 설정이 나온다는 건 최소한의 개연성을 위한 작가의 노력이나 고민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보여주는 대로 믿어라' 하는 식의 억지 설정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다는 것.

죽은 자도 살려내는 마당에 감옥쯤이야 나오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감옥에 모두 들어간 이들이 단 2회 만에 모두 출소하는 상식 밖의 일들도 별 고민 없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한 마디가 툭 던져진다. "다시는 법 같은 거 믿지 마." 사법 체계가 망가져 이제 돈만 쓰면 아니 편법을 동원해도 쉽게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세상이라는 이야기 한 마디로 이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처리된다. 로건 리가 사망하고 그가 나애교를 죽인 살인범으로 처리된 후 주단태와 천서진(김소연)이 풀려나고, 오윤희(유진)는 심수련이 풀어주고, 이규진(봉태규)과 하윤철(윤종훈)도 보석으로 풀려난다.

물론 모든 이들이 다시 감옥 바깥으로 나와야 얘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설정이 된 것이지만, 이럴 거였으면 시즌2에서 모두를 감옥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마무리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전체 그림을 갖고 집필되었다기보다는 그 때 그 때 임기웅변으로 써졌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개연성 부족이 계속 무리하게 벌어지게 되는 건 전체 이야기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썼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무리한 설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족한 개연성을 '펜트하우스'는 리액션으로 채워나간다. 예를 들어 출소한 천서진이 갑자기 청아그룹 이사회에 난입해 주단태와 거짓 애정을 연기하며 기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부부사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는 장면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장면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기자들과 심지어 박수까지 치는 이사진들에 의해 이해되는 장면처럼 처리된다.

모든 걸 잃은 천서진이 모든 걸 되찾기 위해 꾸민 일이고 그걸 알고 있는 주단태가 이를 가만둘 리 없지만 갑자기 천서진은 주단태가 로건 리를 죽인 그 현장에 있던 사진을 들이밀며 그를 협박한다. 그런 협박이 주단태 같은 인물에게 먹힐까 싶지만, 천서진이 나간 후 주단태는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으로 자신이 천서진에게 당했다는 걸 리액션으로 보여준다. 즉 개연성이 있어서 이해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다른 인물들이 그 억지 설정에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리액션을 해줘서 마치 이해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시즌3까지 연달아 이어 놓는 건 '펜트하우스'의 엉성한 민낯을 완전히 드러내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나마 '펜트하우스'가 강력한 힘을 가졌던 건 시즌1이었다. 부동산과 교육의 문제를 다소 풍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과장되게 그려냄으로써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즌2로 오면서 쌍둥이 설정이 이어지고 드라마는 무리수를 띠기 시작했고, 시즌3는 모든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가능한 것처럼 그려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게다가 시즌3는 편성상 한 주에 두 편이 아닌 금요일 한 편씩 방영한다. 이런 편성 구조도 '펜트하우스'라는 개연성 부족을 속도감으로 지워내는 드라마에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다음 날 이어서 개연성 부족을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키는 방식이었다면 조금은 이 약점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회가 방영되고 한 주가 지나야 다음 회가 방영되는 현 편성에서는 그 약점을 채울 길이 없어졌다.

'펜트하우스3'는 진지한 상황 또한 폭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코미디가 되어간다. 애초 시즌1 하나 정도면 충분했을 내용을 시즌3까지 이어오게 한 건 여러모로 무리수가 되어 부메랑처럼 비판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청률이 나오니 시즌을 이어간다고 할 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시청률은 너무나 괜찮은 드라마라고 해도 적게 나올 수 있고, 정반대로 문법과 룰을 완전히 깨는 막장으로도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펜트하우스'라는 개연성 없는 무리수 드라마가 애써 룰을 지켜가며 개연성을 만들려 고민하고 노력하는 무수한 작가들에게 줄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싶다. 이른바 '순옥적 허용'이라는 말이 줄 상대적 박탈감이.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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