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기자들Q] 이한열 피격 사진은 어떻게 보도될 수 있었나?

이현준 2021. 6.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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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많은 분이 이한열 열사가 피를 흘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 사진'을 생각하실 겁니다.

그 사진이 보도되기 전만 하더라도 민주화 시위는 학생 위주였습니다.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민주화 열기가 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시민은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연세대학생으로서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이경란 이한열기념관 관장은 그때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학생들이 시위하면은 일단 불편하잖아요. 교통이 막히고 최루탄이 맵고 하니까 시민들이 그때는 학생들을 야단을 많이 치셨어요,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뼈 빠지게 고생해서 대학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나 한다고…"

하지만 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확 바뀌었습니다.

특히 6월 11일 중앙일보 사회면에 처음 보도된 이한열 피격 사진은 전국민적인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넥타이 부대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시위 규모가 확 커졌습니다.

결국 6월 29일 군사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며 백기를 들게 됩니다. 사진 한 장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겁니다.

1987년 6월 11일 중앙일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에요. 시민들이 박수를 쳐줘요. 시민들이 같이 시위를 해요. 그리고 학생들이 최루탄 맞고 매울까 봐 높은 건물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던져주세요.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내가 혹은 나의 자식들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질 수도 있겠다고 하는 것을 시민들이 분명하게 느끼셨던 거 같아요."

■ 살벌했던 그 날의 기억…남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이한열 피격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태원 당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입니다. 당시 연세대에선 매주 2~3번씩 시위가 있었습니다. 정 기자 역시 평소처럼 그 날 시위 취재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분위기는 뭔가 달랐습니다.

"최루탄을 유난히 많이 쏘더라고. 그리고 원래 최루탄은 45도 각도로 쏴서 공중에서 터지게 돼 있어. 근데 그 날 각도를 낮춰서 쏘니까 한열이 머리 뒤통수에 와서 맞은 거야. 또 백골단이라고 있어요. 최루탄 쏘면 학생들이 도망가잖아? 그럼 막 따라 들어와 뒤에서 막 방망이로 때리는 거야. 그리고 학교 교문까지 들어와서 잡아 들어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정 기자는 연대 교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현장에는 사진기자만 20여 명이 있었지만 대부분 경찰 라인 뒤편에서 취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생생한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남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갔던 겁니다.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은 그 순간 정 기자는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시위대 동료 이종창 씨가 이한열을 부축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사)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한열이 피 흘리는 것 보고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피가 엉켜서 나오더라고. 또 한 명의 우리 꽃다운 청춘이 죽었구나 하는 걸 느꼈지. 가슴이 아팠어."

■ "제가 책임지겠습니다"…중앙일보가 이한열 사진 보도할 수 있었던 뒷이야기

이한열 피격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장입니다. 보도지침이 삼엄한 시절, 언론사는 시위 사진 한 장도 마음대로 사용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6월 11일 중앙일보 사회면에 이한열이 피를 흘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 사진이 처음으로 보도됐습니다.

"정태원 선배에게 우리가 이 사진을 써야 되겠는데 좀 줄 수 없어? 그랬더니 자기 서랍에 사진이 몇 장 있으니까 애들 시켜서 한번 가보래요. 사진을 딱 보니까 와 이거 대단한 사진이 있어요. 4·19 때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 사진이 시체로 떠오른 사진이 있어요. 그 사진으로 인해서 4·19의 원동력이 됐거든요. 이 사진도 정말 역사를 바꿀 사진이라고 생각하면서 국장한테 가지고 갔죠."

모두가 이한열 피격 사진이 중요한 사진이라는 걸 알았지만, 선뜻 보도를 결정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보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하루 내내 논의가 이어진 끝에야 결단이 내려졌습니다.

"국장님, 이거 정말 대단한 사진입니다. 이거 써야 됩니다. 그러니까 국장이 다른 신문들도 다 못 썼는데 어떻게 이 사진을 쓸 수 있겠느냐 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부장들도 다 자신 있게 얘기를 못 해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금창태 씨가 부국장이었는데 뭐 한번 써봐도 괜찮겠는데? 하고 좀 거들었어요. 마감 시간대까지 결론이 안 났어요. 그때까지 저는 막 국장한테 계속 대드는 거죠. 결국 1면은 안 되고 사회면에 쓰자고 허락을 했어요."

■ "10년 동안 신입 사진기자 뽑지 않는 회사도 있다"

이한열 피격 사진 보도는 대한민국 보도사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현재 국내 사진기자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신문 구독자 수가 줄어들면서 보도사진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시장도 사진보다 동영상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사진기자들은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포토라인에 유튜버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근데 여기는 포토 라인이니까 사진기자만 서세요 라고 말을 할 수 없잖아요. 회사에 소속되어야만 언론인인 것도 아니고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죠. 그만큼 매체 환경이 바뀐 거 같아요. 그냥 그 안에서 우리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거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


자연스레 사진기자들의 자리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한국사진기자협회에 등록된 사진기자 수는 약 5백 명인데 10년째 거의 그대로입니다. 인터넷 사진기자들은 늘어나서 전체 규모는 유지되고 있지만 10대 일간지 사진기자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신입을 뽑은 지 10년 가까이 된 회사들도 꽤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 산업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사진 기자들에겐 조금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그런 현상인 거 같아요. 차장급인데 아직도 부서 안에서 막내인 선배들도 있거든요. 오랜만에 누군가 새로 들어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

■ "보도사진 한 장의 힘은 똑같다…여전히 세상 바꿀 수 있어"

하지만 미래가 비관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사진기자들이 찍는 보도사진의 의미와 가치는 일반 사진들과 여전히 차이가 있습니다. 2019년에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탄 김경훈 사진기자도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차이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촬영하러 갑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취재를 하러 갑니다란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 사건이나 혹은 그 뉴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가서 여러 가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 중에서 가장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그 장면을 포착을 하는 겁니다."(김경훈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특히 한 장의 사진이 가진 힘은 시대가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사진기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입니다.

2015년에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기 사진은 전 세계에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묻는 계기가 됐고, 최근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서도 군경에 맞선 수녀의 사진 한 장이 쿠데타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국내에서도 검찰 조사실에서 팔짱 끼고 웃으면서 조사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찍은 사진이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시리아 난민 꼬마가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면을 찍은 사진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서 한 번 더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사진의 힘은 결코 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에 있어서 변화가 있을 순 있겠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서 역사를 기록하는 힘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김경훈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좋은 보도사진 한 장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진이 갖고 있는 시적인 특징들이 있죠. 되게 은유적이고 비유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이 있거든요. 그에 반해서 영상은 소설에 가깝습니다. 전후 맥락들이 되게 촘촘하게 그 안에 담겨있고 설명적이잖아요.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좋은 시의 영향력과 존재감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질문하는 기자들Q'는 <오보로 인한 상처, 주홍글씨 못 지우는 정정보도>와 <역사를 바꾼 한 컷의 힘, 보도사진의 미래는?>을 주제로 오는 13일(일요일) 밤 10시 35분에 KBS1TV에서 방영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 홍석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방송은 질문하는 기자들 Q 유튜브 계정을 통해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ltnR6L9PTipGx7Q-FqjNcg">https://www.youtube.com/channel/UCltnR6L9PTipGx7Q-FqjNcg

이현준 기자 (hjni1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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