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쓰러져 30시간후 발견..루저들을 위로한 홍대가수

조성준 2021. 6.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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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78]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가수, 1973~2010)

음유시인의 역할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들은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게임 속에는 전사, 궁수, 마법사, 도적, 사제 등 다양한 직업이 있다. 게이머는 직업을 고르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강력한 괴물을 잡기 위해 게이머들은 힘을 합친다. 전사는 괴물 가까이 붙어 검을 휘두르고, 궁수는 멀리서 활을 쏜다. 마법사는 전사와 궁수가 죽지 않도록 그들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치유 마법을 사용한다. 동시에 직접 괴물에게 타격을 주는 공격 마법을 쓰기도 한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 오직 아군만을 돕는 직업도 있다. 음유시인이다. 이 직업을 고른 사람은 전투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동료에게 힘만 보탠다. 그들은 전사의 전투력을 높여주는 마법을 사용하고, 궁수에게 걸린 저주를 푸는 주문을 외운다. 게임마다 음유시인 역할을 지칭하는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통틀어서 '서포터'라고 부른다.

서포터라는 포지션은 비교적 인기가 없다.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이 세계에서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어서다. 그런데, 굳이 음유시인이라는 직업을 골라서 게임에서마저 타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음유시인에 관한 역사는 길다. 어느 시대에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고, 춤을 추는 사람이 있다. 중세 유럽에서 음유시인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악기 하나를 들고 방랑하며 서민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 떠돌이 예술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팍팍한 삶을 잊었다. 음유시인은 게임 속에서나 역사 속에서나 타인을 위해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예술가는 여전히 있다.

루저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사진 제공=달빛요정 홈페이지
103개 인디밴드가 홍대에 모였다

2011년 1월 27일. 홍대 앞에 인디 뮤지션들이 모였다. 총 103개 팀이었다. 그들은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난 동료 가수를 추모하는 공연을 열었다. 103개 팀은 홍대 앞 구석구석에 있는 소규모 클럽에서 동시다발로 공연을 열었다. 우리나라 공연 역사상 가장 많은 밴드가 참여한 행사였다. 이들은 제각각 목소리로 동료가 남기고 간 노래를 불렀다. 공연 티켓 4500장은 1시간 만에 매진됐다. 이 티켓 한 장만 있으면 그날 여러 클럽에서 열렸던 공연을 모두 관람할 수 있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홍대 거리가 한 가수의 노래로 물들었다. 이 음유시인의 이름은 이진원이다. 그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홍대 인디 뮤지션이다. 인디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달빛요정은 제법 알려진 이름이었지만, 대중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이 예술가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화제였다. 추모 공연에 관객 수천 명이 몰린 건 대한민국 인디 음악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사건이다. 소셜미디어 역할이 컸다. 당시 트위터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쓸쓸한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 빠르게 퍼졌다. 반지하 자취방에 살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노래했던 달빛요정의 사연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다.

1집 `인필드 플라이` 앨범 표지.
루저들의 찬가 '절룩거리네'

홍대 뮤지션이었던 달빛요정은 대학도 홍대였다. 독문과를 전공했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인생이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이 통하던 때였다. 취업난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시기였다.

그가 졸업할 때쯤 IMF 사태가 터졌다.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은 자동으로 해결되던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한 그는 비정규직으로 음반사와 인터넷 방송국을 떠돌며 일했다. 문득 생각했다. '그냥 내 음악을 해볼까?' 그렇게 얼렁뚱땅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1인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명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미래가 잘 안 보이는 자신의 삶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2004년에 낸 1집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대학생 때부터 틈틈이 작곡한 200곡 중에서 추리고 추려 만든 앨범이었다. 음반사를 거치지 않고 가내수공업으로 앨범 2000장을 직접 제작했다. 이 중에서 1599장을 팔았다. 홍대 인디음악계에서 이 정도면 기적이었다.

밴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야구팬이었다. 야구 모자를 거꾸로 푹 눌러쓴 채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하필 LG 트윈스 팬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챔피언만 기억하는 세상에 돌직구를 날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1집 대표곡 '절룩거리네' 가사 중 일부다.

"시간이 흘러도 / 아물지 않는 상처 / 보석처럼 빛나던 / 아름다웠던 그대 / 이제 난 / 그때보다 더 / 무능하고 비열한 / 사람이 되었다네 / 절룩거리네 / 하나도 안 힘들어 / 그저 가슴 / 아플 뿐인 걸 / 아주 가끔씩 / 절룩거리네 / 깨달은 지 오래야 /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사후 앨범 `너클볼 컴플렉스` 앨범 표지.
스끼다시 내인생

'절룩거리네'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해 절룩거리는 사람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노래다. 가사만 보면 비애감이 가득해 보이지만, 음악을 들으면 그렇지만은 않다. 유쾌한 멜로디와 함께 자신의 처지를 당당하게 고백한다. '세상이 나를 패배자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도 인생이다'고 담백하게 주장하는 노래다.

1집에 수록된 또 다른 곡 '스끼다시 내 인생'도 비슷한 정서를 품은 노래다. 그는 이 노래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끼다시(쓰키다시)'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라며 불쑥 희망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지질하고 궁상맞은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보통 이하 삶을 겨우 버티는 젊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다. 훗날 장기하와얼굴들이라는 밴드가 '싸구려 커피'라는 곡을 들고나와 벼락 같은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달빛요정은 루저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 인디 뮤지션이었다.

달빛요정은 그나마 그쪽 세계에서는 잘 풀린 가수였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잘 벌 때도 1년 수입이 1200만원을 넘지 않았다. 한 달에 100만원을 겨우 버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편의점 아르바이트 수준 수입이었다. 이것이 홍대에서 잘나가는 가수의 현실이었다.

역전 홈런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국내 음악 시장이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급격히 재편됐다. 이 흐름을 주도한 곳이 싸이월드다. 싸이월드 이용자는 도토리를 이용해 음원을 샀고, 이 노래를 미니홈피 배경으로 걸었다. 한때 싸이월드는 국내 음원 시장에서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단 하루 만에 싸이월드라는 플랫폼에서 음원 20만곡이 팔릴 정도였다.

도토리를 주고 달빛요정 음악을 사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거는 사람이 많았다. 앨범 판매 수익이 저조했던 인디가수들에게 디지털 음원 시장은 기회였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했다. 시장 구조 자체가 가수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형성됐다. 음원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정작 창작자에게 떨어지는 돈은 미미했다. 유통 과정에서 온갖 수수료를 떼고 나면 가수에게 돌아오는 돈은 티끌 수준이었다. 달빛요정은 3집에서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꼬집는 곡을 수록했다. 제목은 '도토리'였다. 싸이월드를 저격한 곡이었다. 그는 루저들의 대변자이면서 동시에 루저를 짓누르는 세상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는 반항아였다.

2010년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달빛요정. /사진 제공=달빛요정 홈페이지
루저들을 위혼 달빛요정

달빛요정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2010년 11월 1일 그는 달빛 한 조각도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골방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예상 못한 비극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쓰러진 후 30시간이나 지나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며칠 후 인생이라는 마운드에서 영영 퇴장했다.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는 어떤 가정을 하게 된다. 만약 달빛요정이 가수라는 험난한 길을 걷지 않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면 어땠을까.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을 수도 있다. 아마 뇌출혈로 쓰러졌더라도, 곧바로 가족이 그를 병원으로 옮기고 보살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뇌출혈로 쓰러질 만큼 몸을 혹사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만약 중간에 기타를 내려놨더라면 그는 비록 꿈은 잃어도 건강은 잃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두 부질없는 가정법이다. 어떤 사람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음유시인의 길을 걷는다. 아무도 그런 길을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뜯어말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악기를 들고,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 삶 역시 RPG 게임과 비슷하다. 누군가는 주인공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조연 역할을 한다. 또 누군가는 엑스트라를 맡기도 한다. 굳이 선택할 수 있다면 대다수는 주인공을 택할 것이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중에서 뭘 갖겠냐고 하면 모두가 금메달을 고를 테다. 하지만 세상은 게임보다 난도가 높다. 레벨 업을 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된다.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대다수는 엑스트라다. 동메달은커녕 90%는 아무 메달도 얻지 못한다. 달빛요정은 이 90%를 위로하는 음유시인이었다. 내 삶이 아무도 젓가락질하지 않는 인기 없는 밑반찬처럼 느껴지는 날, 달빛요정의 음악을 들어보자.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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