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심판의 막이 올랐다

고한솔 2021. 6. 1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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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사법부][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30) 임성근 법관탄핵심판
세월호 7시간 재판 등에 개입 혐의
임성근 법관 탄핵심판 10일 첫 변론
"어떤 재판권도 침해한 적 없었고
임기 뒤라 탄핵 대상도 아냐" 항변
당시 판사들 "선배 조언" 주장해도
재판 진행 묻고, 실행까지 확인해
헌재는 파면 여부 결정뿐 아니라
재판 개입 따져 법관독립 보호해야
재판 개입 의혹이 불거진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출석해 피청구인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오늘날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며 법관을 인신공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 법관들이 부당하게 비난받을 여지는 없는지 노심초사하며 이를 해결하는 게 형사수석부장판사 이전에 선배 법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10일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 재판부를 마주 보고 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를 대상으로 한 법관 탄핵심판의 첫 변론기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과 임 전 판사 대리인단이 마주 앉았다. 피청구인석에 앉은 임 전 판사는 당사자로서 의견 진술을 하기 위해 발언대로 걸어 나왔다. 그는 “6년 전 재직할 때 일로 이 자리에 서게 돼 참담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선배 법관으로서 부당하게 공격받는 후배 법관을 보호하고자 했을 뿐 어떤 재판권 침해도 없었다고 항변했다. 사건 내용이 ‘침소봉대’되거나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 2월부터 2년 동안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일하면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사건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사건 △프로야구 선수의 도박 사건이다.

법관은 그 신분을 강력하게 보장받는다. 위헌·위법 행위를 저지른 법관을 공직에서 배제해 훼손된 법치주의를 바로잡는 제도가 탄핵이다. 개인의 범죄행위 여부를 살피는 형사재판과는 그 결이 다르다.

법관 탄핵심판의 본질은

첫 변론기일의 쟁점은 이미 법복을 벗은 임성근 전 판사의 탄핵심판이 가능한가(적법 요건)로 모였다. 2021년 2월4일 임성근 판사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됐지만, 임 전 판사는 그 임기가 만료돼 2월28일 퇴임했다. 임 전 판사 쪽은 이미 직에서 물러난 이상 탄핵심판으로 얻을 이익이 없다며 탄핵심판 청구를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에 흠결이 있거나 부적법할 때 본안 판단 없이 심리를 종결하는 것이다. 임 전 판사를 대리하는 이동흡 변호사는 탄핵심판은 그 대상자의 파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그 본질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 주장에 따르면, 공직자가 재직했을 당시 행동으로 언제든지 탄핵소추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고위공직자의 일생을 통틀어 언제든 탄핵할 수 있게 해 탄핵소추권자인 국회, 특히 다수 의석을 점한 정당에 탄핵소추라는 가공할 무기를 주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공직자가 임기 만료로 퇴임한 경우 탄핵 심리가 가능한지 명문의 규정은 없다. 법관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10년마다 연임하게 한 헌법적 장치(제105조)가 역설적으로 탄핵심판을 피해 갈 길을 마련해준 셈이다.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 이명웅 변호사는 이렇게 맞섰다.

“현직인 고위공직자가 임기 만료로 인해 더 이상 탄핵심판을 할 수 없다면 임기 만료 즈음해서 생기는 공직자의 불법행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헌재의 탄핵심판이 형사재판 등을 이유로 지연될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본안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탄핵 제도 본질에 심히 반하는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도 임성근 전 판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바 있다. 의사당 난동 사태를 부추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그의 임기 종료일인 1월20일을 일주일 앞둔 1월13일 하원을 통과했다. 퇴임 대통령이 탄핵 대상이 되느냐가 문제가 됐다. 하원 탄핵소추위원은 “헌법에 ‘1월의 예외’(January Exception)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임기 말 헌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기간을 설정한다면, 후임자에게 위험한 선례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상원은 트럼프 탄핵심판이 합헌이라고 표결했고, 심리 끝에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헌재가 말해야 하는 것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이 헌재에 기대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 침해 행위에 대한 헌법적 판단이다. “이 사건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처럼, 탄핵심판의 목적은 단순히 임 판사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임 전 판사가 자리에서 물러났어도, 과거 재판 관여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방치하기보다 그 행위의 위헌성을 따져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보호하는 기준을 밝힐 수 있다. 특히 법원 내부로부터의 사법권 침해는 사법행정을 명분으로 한층 더 교묘하게 진행돼 기준 마련의 필요성이 더 크다.

헌재는 실제 사회 주요 국면마다 일종의 헌법적 지침을 내려왔다. 물대포 직사 살수로 숨진 백남기 농민 사건이 한 예다.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경찰의 직사 살수와 살수차 운용지침에 관해 헌법소원을 냈다. 이듬해 9월 백남기 농민은 숨졌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도 이미 숨진 백남기 농민의 권리구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헌재는 판단을 접지 않고 2020년 4월 경찰의 물대포 직사 살수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기본권을 해치는 물대포 사용 행위는 앞으로 또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헌법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헌재가 판단한 적 없었던 만큼, 이 사안에 관해 헌재가 ‘헌법적으로 해명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백씨의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짚으면서 직사 살수의 요건과 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사법권 독립 침해 사건도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있고 헌재 판단이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본다면 ‘각하’도 넘어설 수 있다.

재판권 침해는 없었다는 주장

탄핵심판 청구가 각하되지 않고 판단까지 나아간다 해도, 임성근 전 판사는 재판권 침해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재판 관여를 당했다는 법관의 증언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그의 형사재판에는 전·현직 판사 4명이 증인으로 나왔다. 세월호 7시간 재판의 주심이었던 임현준 판사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지난 5월25일 형사재판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2014년 8월 가토 다쓰야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추측성 기사를 일본 <산케이신문>에 실었다는 혐의(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차장)은 임성근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7시간 보도가 허위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런 기사를 작성한 건 문제가 있다고 법정에서 밝혀달라 요구했다. 아무래도 법리상 무죄가 선고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대통령과 민정수석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임성근 전 판사는 이를 재판부 재판장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주심인 임현준 판사는 임성근 형사수석부장판사나 법원행정처의 존재는 상상도 못 한 채 재판장의 지시나 협의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그는 재판장의 이런 지시나 결정에 대체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이 허위라고 짚은 중간판결적 판단에 관해서는 피고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했고, 허위 보도한 피고인을 질책한 것 또한 “(재판장이) 해달라고 해서 한 건 맞는데 그 지시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임성근 판사의 요구에 의해 바뀐 판결의 논리구조 또한 애초 그의 생각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임현준 판사의 법정 증언이다.

“선고기일 변경 전이었습니다. 이동근 재판장이 방에 갑자기 들어오셔서 ‘판결을 바꿔서 피해자 양쪽(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윤회) 모두 명예훼손은 되는데 비방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무죄를 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장님, 그거 제가 원래 이야기하던 거잖아요’라고 말했는데 별 대답 안 하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동근 재판장이) 요청을 하셨고, 저로서는 별로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실행 확인했는데 선배의 단순 조언?​

재판 개입을 당했다는 일선 판사들은 “재판상 독립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한 적 없다”(민변 변호사 사건 담당 최창영 전 판사)거나 “바른 결정을 하도록 조언받은 것”(프로야구 선수 도박 사건 담당 김윤선 판사)에 불과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는 임 전 판사가 손에 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는 선배 법관으로서 한 조언에 불과할 뿐 판단은 재판부 스스로 내렸다며 재판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에서 사법행정권자인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선배 법관, 지시나 요구는 조언 내지 권유로 치환되고 순화된다. 법원행정처 윗선의 요구도 삭제돼 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뚫고 들어오는 주체와 방식, 시점은 다양하다. 선배 법관의 조언과 법관 평정에 관여하는 사법행정권자의 지시나 요구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을까. 그저 우연적 사정에 따라 재판의 결과와 윗선의 요구가 일치했을 뿐 재판에 개입한 그 자체로 위헌적인 건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국회 쪽 대리인단 양홍석 변호사는 이렇게 받아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형사수석부장실로 소속 법원의 담당 법관을 불러 마침 법원행정처의 관심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재판 진행 내용, 절차에 관해 어떤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행됐는지 확인했습니다. … 헌법 침해 행위에 동의하고 동조했다고 해서 위헌성이 조각되거나 위헌이 아니라고 하는 건 탄핵심판 제도의 본질에 반하는 주장입니다. 법관으로서 법대 위에서 오랫동안 재판하고 사법행정의 요직을 수행하다 보니 이런 초법적 행위가 조언이나 권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동안 묵인됐을지 모르겠지만 외부에 알려졌고, 알려진 것만 해도 위헌성, 위법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첫 변론기일은 2시간42분의 공방 끝에 마무리됐다. 탄핵심판 제도의 본질에 관한 해석으로 시작된 공방은 임성근 판사 행위의 성격과 위헌 여부까지 나아갔다. 헌재가 각하로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다면 빈칸으로 남을 질문들이다. 법관 탄핵은 전례가 없다. 국회 쪽 대리인 송두환 변호사는 “개척자적인 발상으로 이 사건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소추위원의 대리인단은 재판 관여를 받았다는 판사들과 당시 서울중앙지법 공보관 등 6명의 전·현직 판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헌재는 증인 채택 여부를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6월15일로 정해져 있던 2회 변론기일은 7월6일로 미뤄졌다.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심판의 막이 올랐다.

고한솔 <한겨레21> 기자 sol@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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