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끌고 온 질문에 먼저 응답하라

한겨레 2021. 6. 1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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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론의 불편함
기성세대들의 향한 청년들의 ‘공정성 담론’은 단순한 세대 특성 때문이 아니라, 지금 사회가 만들어놓은 체제의 문제점을 꼬집는 것이다. 지난 4월 청년시국선언 원탁회의와 대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는 청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책을 냈다. 우리는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소소한 북토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에서 동료는 “90년생”으로, 나는 “80년생”으로 소개되었다. 기사를 본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를테면,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있다. 그런데 누군가 특정인을 ‘여’기자, ‘여’선생이라고 호명한다. 평등하던 동료 관계는 호명에 의해 성별화되고, 특정한 성에 부여된 사회문화적 역할이나 기대감을 서로 의식하게 된다. 이 기사를 보기 전까지 동료와 나 사이에 연령은 중요한 변별점이 되지 못했지만 ‘90년생’과 ‘80년생’으로 호명되는 순간 미묘한 구분점이 생겼다. 그리고 이러한 일화는 사회나 언론에 만연한 세대주의를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특정한 집단을 세대로 묶어내는 방식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6·25세대, 86세대, 엑스(X)세대, 엔(N)포 세대,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엠제트(MZ)세대까지 명칭만 바뀌었을 뿐 익숙한 문법이다. 세대 관점이 주는 이점도 있다. 가령 전쟁이나 아이엠에프(IMF)를 경험한 세대가 공유하는 인식이나 문화를 연구할 때, 세대 개념은 개인의 삶을 동시대적 맥락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요즘 목격하는 세대 논의는 모든 현상을 그저 ‘세대’라는 틀로 치환하는 방식이다. 더욱이 책 <82년생 김지영>과 <90년생이 온다>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년생 △△△’ ‘90년생’ 같은 수사적 표현은 공공기관 홍보물뿐 아니라 마케팅 전략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세대는 더 잘 팔리는 상품으로 소비된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세대주의는 다양한 사회 의제를 ‘90년생’이라는 한정된 연령층의 문제로 축소하고, 그 원인 또한 청년에게 있는 듯 대한다. 그리고 ‘90년생’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능숙하고, 개인주의자에 회식에도 잘 안 가고,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선호한다는 식의 묘사는 문화적 현상의 일부분을 마치 그 집단의 본질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90년생’ 필자를 초대한 좌담회나 인터뷰에서 왕왕 목격할 수 있다. ‘90년생이 말하는 진짜 공정이란 무엇인가’ ‘청년들이 주식, 코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대 남성은 왜 보수화된다고 생각하는가’ 등등.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왜 자신들도 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90년생’에게 답하라고 하는 걸까? 정말 ‘90년생’이 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 세대주의적 문법이나 관점으로 질문을 구성하는 방식이 손쉽고 익숙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만일 9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서 어떠한 혜안을 얻고자 한다면, 질문에 앞서 이들의 언어가 발화된 자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귀한 이유는 기존의 관점과 문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자리, 즉 권력 바깥에서, 세대주의 바깥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코다(CODA·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청인 자녀)로서 장애 문제에 대해 발화하고, 전쟁과 기억을 고민한 이길보라 감독. 시민사회 영역에 관심을 두고 오랫동안 저널리즘과 사회운동에 질문을 던지는 강남규 작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론, 위기, 민족주의 등이 만들어낸 욕망을 케이(K)라는 단어로 풀어낸 임명묵 작가. 그 밖에 가족 돌봄 노동, 질병권, 다양한 문화·가족 구성권, 낙태를 비롯한 성적 재생산권, 성소수자 인권, 기후위기, 동물권 등에 관한 의제를 끌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동안 사회가 답하지 못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이들이다.

‘90년생’이라서 재기발랄하고,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 삶에서 치열하고 성실하게 문제를 발굴하고, 거기에 응답하고자 하는 윤리적 태도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경청해야 할 가치를 얻는다. 이 새로운 세대에게 어떤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변화에 맞는 질문으로 다시 물어야 한다. ‘90년생’에게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해법을 내놓으라는 태도를 버리고, 어떻게 이 젊은 세대가 끌고 온 질문에 대해 응답하고 책임질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그 시작은 이 글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있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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