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낮은 데로 흐른 아침이슬, 이제 바다가 됐어요"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이건 어느 한 분야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음악이란 것이 왜 존재하고 우리는 음악에 어떻게 위로받고 힘을 얻는지에 대한 시작과 해답 같은 거였어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마치 한국 대중음악의 세대와 장르를 아우른 압축판과도 같다.
정태춘과 한영애부터 레드벨벳 웬디, NCT 태일까지. 나윤선부터 이날치, 노래를찾는사람들, 학전 출신 배우 황정민까지. 김민기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이들을 한 음반에 모을 수 있었을까.
최근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박학기는 "(김민기 음악은)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음악, 여러 세대가 함께 나눠야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번 트리뷰트 앨범과 향후 개최될 공연의 총감독을 맡아 실무를 이끌어 왔다.
지난 6일부터 음원이 공개되기 시작한 트리뷰트 앨범은 후배 뮤지션들이 한국 대중문화의 거목에게 저마다 보내는 헌사이자, 여전히 무수한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김민기 음악의 '현재적 의미'를 보여주는 음반.
박학기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노래들이 생명력을 가졌으면 했다"며 "요즘 스타일에 맞게 포장지를 바꿨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그걸 열고 한번쯤 관심 있게 봐준다면 분명히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영애의 전화…"우린 김민기에게 빚을 지고 있잖아"
김민기가 작사, 작곡해 1971년 발표된 '아침이슬'은 원래 민중가요로 만들어진 곡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대 젊은이들의 내면과 공명을 일으키며 이내 민주화 열망을 실어나르는 매개체가 됐다. 민주화 이후에도 '아침이슬'은 현실과 불화하며 시련을 맞닥뜨린 이들의 노래로 숱하게 불렸다.
이번 앨범의 단초는 2019년 4월 가수 한영애가 박학기에게 전화를 걸어오면서부터였다.
한영애의 말은 이랬다. "우린 말이야, 김민기한테 다 빚을 지고 있는 것 아니야?" 김민기가 만든 대학로 소극장 '학전' 무대에 섰고 김광석 추모 사업을 함께 이어온 박학기 역시 "형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던 차였다.
한영애, 박학기에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음악평론가인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함께하게 되며 구상이 발을 뗐다. 강 대표의 경기문화재단이 앨범 제작을 비롯한 지원에 나서면서 사업이 궤도에 올랐고 김형석 작곡가도 음악감독으로 합류했다.
자신을 기념하는 것,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김민기는 역시나 손사래를 쳤다. 이후 막걸리를 사들고 학전에 찾아온 강헌 대표와 박학기에게 "어차피 내놓은 음악은 내 노래가 아니라 대중들 거니 어떻게 할 수는 없고, 날 끌어들이진 마라"고 했다고 한다.
선곡은 가수들이 고르기보다는 "거의 원론적으로는 지정"해주는 방식이었지만, "100% 다 따라줬다"고 박학기는 전했다. "그러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김민기라는 뮤지션에 대한 존경의 두께가 조금 달랐던 거죠."
"빚 갚으려 한 일인데…하고 나니 빚이 더 커졌네요"
앨범에는 총 18곡이 수록되며 지난 6일 5곡 음원이 첫 공개됐다. 김형석이 스트링 편곡을 한 풍부한 사운드에 한영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실린 '봉우리'와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가 재해석한 '철망 앞에서', NCT 태일이 청아한 음색으로 부른 '아름다운 사람' 등이다.
'가을편지', '작은 연못'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뿐만 아니라 김민기의 창작 세계 전반을 담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70년대 노동운동 현실을 그려 불법 테이프로 배포했던 음악극 '공장의 불빛'(1978년 작) 속 노래들이나 1973년 초연된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주제가 등이 그렇다. 노동자들의 출근 장면을 노래한 '공장의 불빛' 도입부 곡 '교대'를 이날치가 재해석한 버전에서는 2021년의 현실과 맞닿은 감성이 느껴진다.
박학기도 김민기의 '친구'를 불러 참여했다. 그에게 '친구'란 각별한 기억이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친구'를 처음 들었을 때, 어릴 적 처음으로 봤던 영화가 기억났어요.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어둡고 큰 스크린에서 느껴지던 압도감 같은 것…. 당시 나를 확 잡아끄는 것 같던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노래에서) 느꼈죠."
거장의 노래를 다시 부르기에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참여 가수들은 저마다 "행복했다",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고 한다. "형에게 진 빚을 갚으려던 일이었는데 하고 나니까 빚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우리가 느낀 행복감이 더 컸지 않을까 해요."
조동익, 윤일상, 박인영(스트링) 등 걸출한 뮤지션들이 편곡자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는 참여 가수 모두가 함께 부른 '아침이슬'이 공개된다. 이 노래의 50주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박학기는 김민기의 곡 '봉우리' 속 가사를 비유로 들었다.
"우리가 봉우리에 올라가려 하고,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침이슬'은 어떻게든 올라가려 버둥댄 적이 없어요. 낮은 데로만 그냥 흘렀어요. 작은 물줄기들이 중력에 의해서 순리대로 흘러 지금은 바다가 된 거죠."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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