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 바꾼 한달, '이준석 돌풍' 돌아보니
이준석 '돌풍의 한달'…여의도를 뒤집었다
부제 : [the300][30대 보수당 대표 탄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후보의 지난 한 달은 그야말로 '돌풍'이었다. 이 후보는 그에 대한 지지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11일 결과로 증명하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이 후보 돌풍은 그의 이름이 처음 포함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부터 시작됐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미래한국연구소가 여론조사업체 PNR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적합도 13.9%로 나경원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지난달 16일 여론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적합도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진행된 다른 여론조사들에서도 그는 꾸준히 선두를 유지했다.
이 후보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주요 요인에는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문법으로 선거 운동에 나섰다는 점이 있다.
이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 '정치인 자격시험'이라는 개념을 들고나와 화제를 일으켰다. 그는 국민의힘이 공천하는 모든 공직선거 후보자에게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유사한 자격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젊은 세대는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2~3년씩 수험생활을 한다.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의 으뜸가는 권한은 지자체와 중앙정부에 대한 감사권"이라며 "우리 당의 공천을 받으려면 앞으로 기초적인 자료해석 능력, 표현능력, 컴퓨터 활용능력, 독해능력 등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시도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노력해서 다시 응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합동연설회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에 가 '탄핵 정당론'을 꺼내는 담대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저는 저를 영입한 박 대통령에게 감사하다. 박 대통령이 저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저는 제 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박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 국정농단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을 비판하고, 통치불능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차 컷오프 경선 결과 또한 이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1위로 경선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세대교체·개혁' 적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한 김웅 의원, 김은혜 의원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같은 결과를 두고 신진세력 간의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성사됐다고 분석했다. 차재원 평론가(부산가톨릭대 겸임교수)는 "예비경선 결과를 통해 이준석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단순히 젊은층 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에서 이준석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이준석 대세론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무엇보다 공격적인 언론 활동을 보였다. 이 후보는 당 대표 선거 출마 선언 이후 들어오는 모든 언론 인터뷰 제안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 캠프 측은 "선거기간 동안 들어온 인터뷰는 큰 사정이 없으면 가능한 한 다 진행했다"며 "워낙 예전부터 언론 노출에 익숙했던 후보기 때문에 대응 속도가 빠를 수 있었고, 언론과 소통을 해야만 당심과 민심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 '당선'…정치 '세대교체' 신호탄 될까
부제 : [the300][30대 보수당 대표 탄생]
'30대·0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은 정치권을 이끄는 주요 세력의 교체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한국 정치의 주류로 군림한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다선'이 퇴장하고 청년과 신인 정치인이 부상하는 '정치 세대교체'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새로운 대안세력을 향한 기대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 역사에서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30대 당대표 탄생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박근혜 키즈'로 정계에 입문한 뒤 10년 동안 특출난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한 인물에게 정권교체라는 중대차한 임무를 맡겼다. 안정보다 변화, 경륜보다 패기를 원한 야권 지지층의 여론이 반영된 결과다.
세대교체는 오랫동안 정치권의 시대적 과제였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계파와 다선을 앞세운 중진들이 기득권을 쥔 거대 양당의 선거 구호에 그쳤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신인들이 연이어 수혈됐으나 당의 중심축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 하차하는 경우가 많았다. 계파 정치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었다.
이 대표의 출현으로 경륜을 중시하는 정치 관행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세대교체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청년들의 지지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결합한 새로운 대안세력에 대한 열망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50~60대 586·다선에서 20~30대 청년·신인 정치인으로의 헤게모니 이동이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이 대표의 등장으로 2030세대가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라며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새롭게 싹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불러왔다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탄핵과 문 정부 실망감을 거치면서 환멸을 기대로 바꿀 수 있는 배경과 이대남(20대 남성) 과정, 바람을 키워준 구태 정치인들의 행동도 있었다"라며 "이준석은 (정계에서) 10년 동안 활동한 사람이다. 개인 이준석이 아니라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준석 돌풍이 세대교체까지 이어지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청년·신인 정치인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하려면 수많은 변수와 난관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됐다고 해서 세대교체하고 보긴 어렵다. 중진들 중에서 인물이 없으니까 운이 좋아서 된 게 크다"라며 "정치 세대교체는 매우 필요하다. 세대교체를 하려면 다양한 청년 정치인들끼리 세력화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36살, 정치 역사를 바꿨다… 역대 당 대표들의 나이는
부제 : [the300] [30대 보수당 대표 탄생]
그러나 40대 바람은 다른 곳에서 불었다. 1974년 유진산 전 신민당 총재가 사망했다. 임시 전당대회가 열렸고 김영삼은 총재가 됐다. 45세였다. '40대 기수론'이 가져온 세대교체 바람이 젊은 당 대표를 탄생시켰다.
2006년 열린우리당 당 의장 경선이 열렸다. 김부겸(58년생, 당시 48세)·김영춘(62년생, 당시 44세)·임종석(66년생, 당시 40세) 후보가 당권에 도전했다. 정동영·김근태라는 대선 주자급 중진에 맞섰다.
정동영 상임고문이 52세 나이로 당 의장에 뽑혔다. '신 40대 기수론'을 내걸었던 김부겸·김영춘·임종석 후보는 경험과 경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동영에 이어 의장이 된 김근태도 당시 58세였다.
보수 정당에선 세대 교체 바람이 살짝 늦게 불었다. 2006년 한나라당에서 김영선 전 의원이 46세 나이로 25일간 당을 이끌었을 뿐이었다.
전장은 2011년 7.4 전당대회였다. 1년 전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40대 젊은 '86후보'들이 대거 승리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개혁과 쇄신 요구가 일었다.
홍준표, 유승민, 권영세, 나경원, 남경필, 원희룡 등 지금은 어엿한 중진으로 분류되는 주자들이 당권에 도전했다. 40대 후보는 나경원(63년생, 당시 48세), 남경필(65년생 당시 46세), 원희룡(64년생, 당시 47세) 셋이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중진·다선 후보로서 이준석과 대립했던 나경원은 2011년 전당대회에는 입장이 반대였다. 여성·40대 젊은 당 대표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경원은 당시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에게 호소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당의 이미지를 젊게 바꿔야 한다"며 "40대 여성 당 대표가 내년 총선·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2011년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실패한 40대 당 대표 꿈을 10년 뒤 이준석은 36살에 이뤘다. 그사이 젊은 주자들이 패기와 열정으로 당권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새누리당 초대 지도부 황우여(47년생, 당시 64세), 2대 지도부 김무성(51년생, 당시 62세) 등이 당을 이끌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도 김한길(52년생, 당시 61세), 문재인(53년생, 당시 62세) 등 주로 60대가 대표를 맡았다. 올해 있었던 5.2 전당대회에서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7세 나이로 40대 당 대표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정의당 등 비교섭 단체나 원외 군소 정당에서는 30대·여성 당 대표도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거대 양당에선 볼 수 없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영국에서는 38살 당 대표가 나온 적이 있지만 30대 당 대표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준석의 당선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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