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마커' 잘못 다뤄도 낭패 본다..알면 알수록 헷갈리는 골프 룰의 세계

정현권 2021. 6. 1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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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골프] 지난달 춘천권 더 플레이어스CC에서 미국인이 낀 골프모임에 초청받았다.

흔치 않은지라 그 미국인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그린에서의 플레이와 스코어 기록이었다.

그린에 올라와선 캐디 도움 없이 반드시 본인이 마크를 하고 라인도 직접 읽었다. 캐디가 마크를 하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며 본인이 신속하게 마커를 놓았다.

수건을 달라면서 공도 본인이 닦으려고 했지만 동반자들의 설득으로 결국 캐디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첫 홀부터 마지막 홀까지 철저히 그린 위에서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

간혹 동반자들이 컨시드를 줬지만 아랑곳 않고 끝까지 퍼트를 했다. 지켜보던 우리도 그를 따라 룰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린에서 마크와 관련해 규정을 헷갈려 하는 주말 골퍼들이 의외로 많다. 그린에 올라온 공은 본인이 마크하고 라인을 읽는 습관을 길들이는게 좋다.

국내 골프장은 진행여건 때문에 캐디가 마크하고 공을 놔준다. 구력이 오래된 골퍼들도 그린에서 가만히 있다가 캐디가 놔준 공을 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혼자 하는게 좋다. 경기 진행상 캐디가 마크해도 되도록 2019년 룰이 바뀌었지만, 그린에서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을 권한다.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린에 올라오면서부터 부지런히 신경을 써야 한다. 프로선수들은 그린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전체 경사를 훑은 다음 마크를 하고 라인을 읽는 데 집중한다.

공을 집어 들기 전 원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를 볼 마커(Ball Marker)라고 한다. 마커는 반드시 인공물이어야 하는데 플라스틱, 금속, 나무 등 소재는 상관없다. 궁하면 동전이나 물병 뚜껑도 상관없다.

숏 티 등도 무방한데 작은 돌멩이나 낙엽, 나뭇가지 등은 인공물이 아니어서 이들을 사용하면 1벌타다. 단 정해진 규격이 있다.

마커 높이는 1인치(2.54㎝), 너비는 2인치(5.08㎝) 이하여야 하며 화살표 등 방향표시가 된 마크는 사용 못한다. 정렬을 도와주는 도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를 위반하면 2벌타를 받는다.

마크는 반드시 공 바로 뒤나 옆에 해야 하는데 공을 집어 올린 다음 마크하면 1벌타를 먹는다. 동반자가 마커를 치워달라고 요청하면 주변 지형지물과 마커를 연결한 직선 상에서 좌우 원하는 방향으로 옮겨주면 된다.

마커를 원래 위치로 정확하게 옳기는 기하학적 기준을 잡기 위해 나무나 조명등 같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선택한다. 마커를 제자리에 놓지 않으면 2벌타를 받고 만약 고의라면 실격된다.

간혹 동전치기라는 수법으로 핀에 더 가깝게 마크하는 경우가 있는데 2벌타를 먹는다. 거꾸로 예전에는 공 뒤로 약간 떨어진 곳에 마크해도 무방했지만 2019년 룰이 바뀌면서 금지됐다.

마커를 옮겨 달라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반자가 스트로크한 공이 마커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 플레이한 공은 벌타 없이 멈춘 지점에서 그대로 진행하고 마커가 움직였다면 원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된다.

동반자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고의로 마크를 하지 않거나 마커를 옮겨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는 골프 정신에 위배되는데 공식 대회에선 경기위원이 정황을 보고 벌타를 주거나 실격 여부를 판단한다.

귀찮다고 마커를 제거하지 않고 퍼팅하면 1벌타를 받는다. 마커가 라인 정렬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프린지와 그린에 공이 걸쳐 있는 경우가 있는데 공의 밑부분이 조금이라도 그린에 닿았다면 마크할 수 있다. 공의 일부가 그린에 떠 있는 상태에서 마크하면 1벌타를 적용받는다.

공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깃대와 그린에 걸쳐져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공의 밑부분이 그린과 수평면에서 조금이라도 홀 안에 들어가 있으면 홀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마크하고 다시 퍼팅해야 한다.

지난 3월 메이저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노르웨이의 빅토로 호블란(24·노르웨이)이 2타 차로 컷 탈락했다. 사연이 있었다.

첫날 경기를 마치고 캐디와 차를 타러 가던 중 노르웨이의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TV 중계를 보던 중 아들이 15번 홀에서 마커를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은 것 같아 혹시 벌타를 받지 않았느냐는 내용이었다.

실수를 몰랐던 호블란이 바로 신고하자 경기위원회의 비디오 판독 결과 어머니 말이 맞았다. 호블란이 실수한 줄 몰랐기에 실격은 면했지만 2벌타를 소급적용 받았다.

이튿날 호블란은 2타 차를 만회하지 못하고 컷 탈락과 함께 22연속 컷 통과 기록도 멈췄다. 이 사건은 많은 골퍼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보통 경기 후 시청자 제보에 따라 룰 위반으로 판정 나는 경우가 많은데 어머니와 선수가 자진 신고해 기꺼이 벌타를 감수한 사례다.

골프계 구성(球聖)으로 숭상받는 바비 존스(1902~1971)가 1925년 US오픈 마지막 날 자진 신고해 1벌타를 먹은 사건을 연상시킨다. 1타 차 선두를 달리던 그는 러프에서 어드레스를 하던 순간 공이 움직이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신고했다. 결국 공동 1위로 연장전에 들어갔다가 상대방에게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신은 내가 은행 강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칭찬할 것인가." 매스컴의 칭찬에 대한 그의 반응이었다.

나와 동반 플레이를 펼쳤던 그 미국인은 종이 스코어 카드가 없다고 하자 본인이 메모지를 직접 꺼내 따로 자기 스코어를 적는 게 아닌가. 캐디가 카트에 달린 스마트 스코어 카드에 트리플 보기 이상을 더블 보기로 낮춰서 적자 정확한 스코어로 정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터치에 멀리건, 컨시드도 없었다. 평소 80대 중반을 기록하던 필자는 그날 95타를 쳤다.

"가장 지키기 어려운 비밀은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다."(파뇰)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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