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탕남음녀의 마굴" 손가락질..1930년대 경성은 아파트 전성시대
대부분 독신자 임대 전용 ..카페여급부터 고관대작까지 살아
‘최근 ‘아파ㅡ트’ 업자중에는 ‘가임지대통제령’(家賃地貸統制令)때문에 방세는 갑자기 올릴 수 없으므로 ‘스팀’대를 예년보다 사오할씩 올리는 경향이 있다...기실 ‘스팀’이란 말뿐 불을 적게 때므로 방이 차서 견디기가 힘든데 이는 연료를 빙자하여 방세를 올린 것이나 다름없지 아니하냐고 ‘아파ㅡ트’ 유숙인들로부터 부내 각 경찰서에 투서가 연일 들어오고 있다.’(조선일보 1939년 12월 5일 ‘교활한 아파트’ 파란 부분을 누르면 옛날 기사로 연결됩니다)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당국이 집세를 올릴 수없도록 규제하니까 집주인들이 연료비를 40~50% 올려 사실상 집세를 올린 게 아니냐는 샐러리맨들의 투서가 잇따른다는 내용이다. 82년전 경성에 갑자기 웬 ‘아파트’일까. 집세 규제는 또 무슨 소리인가.
지난 4월 나온 책 ‘경성의 아파트’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다. 주거문화사를 연구하는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1930년대 식민지 대도시 경성은 아파트가 넘쳐나던 곳으로 아파트의 시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고 썼다. 박 교수가 책에서 밝힌 경성 아파트만 70여곳이다. 친절하게 부록에 경성 지도를 싣고 아파트 70여 곳의 이름과 주소, 규모, 준공 연도를 밝혔다.
일제는 중일전쟁에 돌입한 이후인 1939년 10월 땅값과 집세를 1년전인 1938년 12월말일 기준으로 되돌리는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앞의 ‘가임지대통제령’(家賃地貸統制令)이다. 하지만 편법으로 집세를 올리는 아파트업주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임대료 규제를 피하기 위해 월세를 받던 아파트를 호텔로 용도를 바꾸기도 했다.
◇'아파ㅡ트' ‘아파ㅡ트멘트’ ‘아파ㅡ트멘츠 하우스’
일제시대 경성은 인구 폭발의 도시였다. 3·1운동 직후인 1920년 25만, 1935년 40만, 1945년엔 100만에 육박했다. 1930년의 경우, 경성 인구 32만2000명 중 일본인은 약 8만7000명(27%)이었다. 집은 부족했고, 집값과 월세는 폭등했다. 요즘 주택난 뺨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산동 미쿠니 아파트(1930년 준공)를 비롯, 황금·녹천장·취산·창경·덕수·관수정·광희 아파트와 미쿠니·히카리·도요타·스즈키·오타 등 일본식 이름을 딴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다.
‘아파ㅡ트’ ‘아파ㅡ트멘트’ ‘아파ㅡ트멘츠 하우스’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아파트는 조선인들에겐 낯설었다. 지금 아파트와는 달리 대부분 독신 아파트로 임대주택이었다. 부엌과 욕실, 화장실은 물론 냉난방시설을 갖춘 곳이 많았다. 1층엔 공동 식당과 사교장, 당구장 같은 오락시설과 공동 목욕탕을 갖추기도 했다. 요즘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건물과 비슷했다.
◇경성의 랜드마크 ‘채운장 아파트’
‘아메리카 인디언의 모자와 같은 풍차를 보고 구라파 농촌으로 미리 짐작 마십시오. 이것은 멀리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것이 아니라 바로 수구문(水口門) 턱에 있는 ‘아파트’ 채운장의 물 퍼올리는 풍차입니다. 도시로서의 인구밀도가 많지 않고, 도시로서의 다른 시설이 제대로 된 바 없는 서울에서 이 ‘아파트’의 그림자를 볼 수있기는 수년 전부터 였습니다만 난쟁이 수염처럼 시답지 않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대경성의 실현을 앞두고 그 ‘수염’도 수염 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1935년 1월1일자 ‘대경성의 새 얼굴’특집)
조선일보 1935년 신년호는 객실 82개를 갖춘 4층짜리 아파트 사진을 실었다. 광희문 근처, 지금의 중구 장충동 1가에 들어선 이 건물은 1927년 착공해 7년만인 1934년에 완성된 경성의 랜드마크였다. 냉난방시설과 욕실을 갖춘 이 현대식 아파트는 순식간에 입주가 끝났다. 건축주는 아파트 부대시설로 ‘댄스홀’을 설치하겠다는 의욕을 부렸다.(당국 허가는 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채운장은 1972년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듬해 일부 철거가 시작돼 몇 년 후 모습을 감췄다.
◇카페 여급부터 고관대작까지 아파트 입주
경성 아파트엔 누가 살았을까. ‘각 관청·은행·회사 등 각종 기관에는 여사무원이 있어 자기들의 전문한 기술과 능력에 따라서 한 역할을 맡아가지고 모든 사무를 처리하고 있으니 세상에서 말하는 ‘아파트걸’로써 장차 올사회의 실업가와 정치가의 첫 걸음을 걷고 있으며...’(1931년10월19일자 ‘취직線에 混戰하는 형형색색의 생활상’) 이 기사는 은행원, 회사원, 공무원 같은 전문직·사무직 여성을 아파트 거주자로 꼽고 있다. ‘경성의 아파트’(172쪽)는 카페 여급부터 고관대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류와 계층이 아파트에 살았다고 설명한다. 조선 최상류층에 속하는 경성 골프구락부 회원 일부도 아파트에 살았고, 고향을 떠나 유학온 학생들도 아파트 주요 입주자였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국적 구별은 쉽지 않고, 임대료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탕남음녀의 마굴?’
독신 남녀가 한 건물안에 사는 아파트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앞의 채운장 기사 말미엔 ‘그러나 앞으로 ‘딴스홀ㅡ’이 생기는 날이면 이 ‘아파트’가 한층 더 탕남음녀들의 마굴이 안 될까 걱정입니다'라고 썼다. 대중잡지 ‘삼천리’도 비슷한 우려를 했다. ‘가정을 떠나 부모들의 슬하를 멀리하고 하숙생활 ‘아빠트’ 생활을 하는 남학생 또는 여학생들이 서로 방문을 하고 찾아다니는 것이 쉬운 까닭에 그 접촉이 비교적 가정에 붙들려있는데 비하여 용이할 것이다. 더구나 전문학교 대학생들은 거의 순결치 못하다. 그래서 결국은 최후의 일선을 넘어서는 것이 자명의 리(理)다.’( ‘삼천리’ 1936년 11월호 ‘여학생행장보고서’ 198쪽) 아파트가 풍기문란의 소굴로 지목당한 것이다.
‘경성 아파트시대’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충정, 황금, 국수장, 취산, 청운장, 적선하우스, 남산동 미쿠니 아파트 등 7곳이나 된다. 황금, 국수장, 충정, 미쿠니 아파트는 지금도 일부 주거 시설로 사용하고 있어 근대유산 탐방 코스로 인기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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