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락지 연못과 장수 샘물.. 마르지 않는 富의 생명줄
○ 집터에서 나온 금빛 돌거북
조선 영조 때인 1776년 지어진 운조루(토지면 오미리)는 2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양반가 주택이다. 낙안군수를 지낸 창건주 류이주(1726∼1797)가 집을 지을 당시 상황을 묘사한 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사람들이 이 터를 본디 이름난 길지(吉地)라고 하였으나 바위가 험난해 감히 터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류이주는 ‘하늘이 아끼고 땅이 숨겨둔 곳(천장지비·天藏地秘)이 나를 기다렸다’고 하면서 수백 명의 장정을 동원해 며칠 만에 집터를 닦았다.”(삼수공행장·三水公行狀)
운조루가 위치한 구만(혹은 구만들)은 앞서 이중환이 점찍은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었고, 이런 풍수설에 따라 류이주가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금구몰니(金龜沒泥·금빛 거북이 진흙 속에 묻힌 터)’라는 명당 이름답게 실제 터에서 돌거북상도 출토됐다. 류씨 집안의 가보로 소중히 보관돼온 이 거북상은 아쉽게도 1989년 도난당해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구만에 99칸 집(현재는 73칸)을 마련한 류이주와 그 후손들은 이후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게 된다. 운조루 주인들은 막대한 농지와 함께 한때 25가구의 노비들을 거느린 지역 최고 부호(富豪)가 됐다.
과연 운조루는 부자가 나는 시냇가 집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우선 운조루 대문 앞으로 바짝 붙어서 흐르는 개울물이 눈에 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돌 도랑을 따라 개울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 운조루의 동쪽 문수저수지 방면에서 흘러온 개울물이 운조루 앞을 지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이를 ‘동출서류 내당수(東出西流 內堂水)’라고 한다. 서울로 치면 경복궁 앞으로 흐르는 청계천쯤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해 그 바깥으로 서출동류(西出東流·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 외당수(外堂水)가 감싸주면 금상첨화다. 운조루에서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2km 남짓한 거리의 섬진강이 그런 물줄기다. 서울의 한강에 해당한다. 이처럼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서로 교차하는 두 물줄기는 터의 좋은 기운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땅이 한층 더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
운조루 주인의 재치 있는 ‘풍수 인테리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문 앞마당에 해당하는 곳에 아예 연못(동서 45m, 남북 15m)을 만들어 놓았다. 네모진 연못 가운데로는 인위적으로 만든 동그란 섬이 하나 있다. 연못 터 자체가 금환락지(金環落地·금가락지가 떨어진 터) 명당이라고도 전해지는데, 실제로 연못 가운데 섬은 대단한 기운이 응집돼 있다. 운조루는 물을 이용한 가택 개운(開運)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운조루에 숨은 5개 ‘보물’ 찾기
첫 번째가 출입구인 솟을대문 상단에 숨겨 있듯 걸린 두 개의 뼈다. 호랑이 뼈와 말 뼈다. 원래는 둘 다 호랑이 뼈였는데 머리뼈를 도둑맞는 바람에 말 뼈로 한쪽을 대체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집안의 액운과 살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호랑이 뼈는 조선시대에도 구하기 힘든 비방으로 통했다. 두 번째는 큰 사랑채와 안채에 있는 둥근 기둥이다. 하늘을 의미하는 둥근 기둥은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궁궐 바깥에서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운조루는 당당히 우주의 중심임을 자부하듯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이다.
세 번째는 바깥사랑채 마당에 심어진 위성류(渭城柳)다. 명나라에 다녀온 사신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위성류는 1년에 두 차례 꽃이 피는 희귀한 나무로 운조루와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는 얘기가 집안 내력으로 전해져 온다.
네 번째는 위풍당당한 건물채에 비해 현저히 낮게 만든 굴뚝이다. 안채와 사랑채의 마루 밑 기단에 낸 굴뚝 구멍은 밥 짓는 연기가 새나가지 않도록 설계한 것으로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의 마음까지 배려한 조치다.
○별서정원이 돋보이는 쌍산재
구례에서 운조루와 비교되는 고택이 쌍산재다. 전국 최장수 마을로 꼽히는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이곳은 운조루와는 불과 2km 남짓한 거리에 있다. 방송사 프로그램인 ‘윤스테이’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쌍산재 주인은 사랑채 앞쪽 마당에 있는 우물 명당을 이웃들에게 내주었다. 우물터가 집안에 있지 않고 집 담장 바깥의 주차장에 있다. 쌍산재 주인이 마을 사람들이 물을 불편하지 않게 길어 가도록 담장을 새로 고쳐 우물을 바깥으로 배려한 것이다. 쌍산재의 넉넉한 마음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쌍산재 역시 운조루처럼 안채에다 ‘베풂의 뒤주’를 운영했다. 춘궁기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뒤주에서 쌀과 보리를 꺼내 갔고, 다음 해 다시 채워 넣는 방식으로 함께 고난을 이겨갔다고 한다.
운조루와 쌍산재는 수백 년에 걸쳐 그 명성을 자랑해온 진정한 명가다.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베풀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자나 귀족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가문의 영속성을 위해서도 필요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사진 구례=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0대, 낡은 정치 뒤엎다
- MZ세대 분노-보수의 정권교체 열망이 만든 ‘6·11 정치태풍’
- 이준석 상대는 아버지뻘… 文과 32세-송영길과 22세 차이
- [사설]헌정사 첫 ‘30대 0선’ 제1野 대표… 낡은 정치 깨부수라는 民意
- “韓 정당 역사상 가장 젊은 당수”…외신도 이준석 당선에 놀랐다
- 李 “대선주자 8월까지 입당해야”… 尹측 “메시지 내지 않겠다”
- [단독]굴착기 기사 “물 뿌리던중 흙더미 주저앉더니 건물 무너져”
- 경기장-콘서트장부터 일상회복 실험…“떼창은 안돼”
- 美-유럽 마스크 벗고 여행… 아프리카-중남미는 ‘백신 사막지대’[글로벌 포커스]
- 창의성과 강한 심장 지닌 당신들을 응원한다[동아광장/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