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세계 최대 ‘코인 도박판’에 방치된 투자자들

김신영 경제부 차장 2021. 6.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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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명이 코인 투자를 하고
주식보다 코인을 더 사고판다
코인 광풍 이지경인 나라는 없다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뉴시스

카카오톡 ‘안 읽은 메시지’가 순식간에 1000개가 넘어간다. 가상화폐 채널 4곳에 가입했더니 휴대폰이 종일 뜨겁다. 주식 시장에도 온갖 ‘파리’가 꼬인다지만 코인 세상과 비교하면 청정하다. “○○코인 이틀 만에 40% 털렸어요” “세력 형님들 가격 좀 띄워 주세요!”…. 한국 코인 시장은 폭주하는 괴물이다. 국민 열 명 중 한 명(580만명)이 코인 투자를 한다. 올해만 400만명이 불어났다. 한국인은 때때로 한국 및 해외 주식 매매를 합친 규모보다 더 많은 코인을 사고판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한국 코인 시장의 특수성은 또 하나 있다. 무법 지대다. ‘규제 공화국’으로 악명 높은 한국 정부가 코인에 대해선 방임형이다. 무허가 거래소는 9월부터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할 뿐 거래소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수상한 행태는 내버려둔다. 그래서인지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는 문턱이 아주 낮다. 200개 넘는 코인이 상장돼 거래되고 있다. 일본은 거래되는 전체 코인 수가 30개가 안 된다. 한국 코인의 3분의 1은 오로지 한국인만 사고파는 ‘김치 코인’이다. 통제 장치가 없어 가격이 하루 수백배씩 흔히 오르내린다. 그냥 도박판이다.

상장사인 한컴그룹이 주관한 코인 ‘아로와나토큰’을 최근 취재했다. 시가총액이 한때 25조원까지 올라갔던 이 코인은 자본금 1000만원짜리 싱가포르 페이퍼컴퍼니가 발행했다. 상장 후 한 달 사이 백서(사업 설명서)를 네 차례나 슬쩍 바꿨고 악기박물관 부관장 출신이라는 전 대표는 논란 속에 갑자기 사퇴했다. ‘아래아한글’로 정부 예산까지 받아가는 기업이 주관했다는 코인이 이토록 허술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만난 한컴 관계자는 말했다. “많은 코인이 그래요. 하지만 관련 법이 없으니 불법이라 하기도 애매하죠.”

전문가들은 이토록 코인 시장이 커진 이상 기본적인 투자자 보호 장치는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단호하다. ‘자기 책임 하에 투자하라’고만 한다. 투자자 보호는 손실을 물어내란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의 투명성·공정성을 갖추도록 정부가 안전장치를 마련하란 뜻이다. 정부는 최근 국회에 “코인 상장을 규제하면 살아남는 코인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코인 시장이 얼마나 아사리판인지 알고는 있는 모양이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문제를 고쳐야 할 텐데, 한국 정부는 결론이 반대다. “그래서 손대기가 난감하다”라 한다.

“오리처럼 걷고 수영하고 꽥꽥대는 새가 있다면 그건 오리다.” 가상화폐 전문가 게리 겐슬러가 MIT 교수 시절 강의에서 반복해 인용한 미국 시구(詩句)다. 그는 대부분 코인이 증권과 비슷한 특성을 지녀 이에 상응하는 투자자 보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려고 이 비유를 쓴다. 겐슬러는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장에 임명됐고 관련 규제 강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증권에 준하는 투자자 보호책’을 투명한 공시, 시세 조작 차단, 이해 충돌 방지 등으로 요약한다. 합리적이다. 다른 주요국도 일찌감치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한국이라고 못 할 이유가 있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코인 도박판이 펼쳐진 이 나라에선 모든 부처가 ‘우리 소관 아니다’라고 몸을 사린다. 한국 투자자만 눈 가리고 맨주먹으로 싸우다 쓰러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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