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청춘들의 여름은 청량하지 않다
소설 보다 : 여름 2021
서이제, 이서수, 한정현 지음|문학과지성사|222쪽|3500원
여름에 필요한 소설은 무엇일까? 출판사는 “계절에 어울리는 젊은 작가들의 단편 소설 셋을 묶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시대 청춘의 여름은 얼음잔에 담긴 탄산과는 달리 청량하지 않다. 장마로 눅눅해진 데다 곰팡이까지 서린 장판을 닮았다.
이서수가 쓴 ‘미조의 시대’ 주인공은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경리로 일했지만 무직 상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전세금 5000만원으로 엄마와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반지하가 유일한 선택지다.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웹툰 회사에서 일하는 친한 언니는 생계를 위해 여성을 감금하는 내용의 성인물을 수시로 그린다. 1960년대 가발 공장 여공들의 흑백 사진이 프린트된 타일 벽을 보며, 언니는 말한다. “넌 내가 나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나는 저 여자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걸 만들고 있는 거야.”
시대와 마주한 청춘의 선택지는 양자택일처럼 보인다. 언니처럼 시대에 순응하거나, 아예 불화하거나. 이제 청춘들은 맞서지 못한다. 서이제의 ‘#바보상자스타’에선 창업에 실패하고 주식으로 돈을 날린 주인공이 아이돌 사촌형을 TV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엿보며 질투를 느낀다. 자신이 품은 소시민적 질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대신 상대를 선망하는 쪽을 택한다. 무기력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좌절된 열정은 그렇다고 꺼지지 않는다. 한정현의 ‘쿄코와 쿄지’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 때 광주 5·18 민주항쟁을 겪은 친구들과 맹세한 우정을 조용히 실천한다. 여자로 살고 싶어 했지만 군대에서 미쳐버린 친구의 삶을 기리고, 시위에 참가한 친구의 딸을 대신 거둔다. 여름날 쓰지만 향긋하게 정신을 일깨우는 커피처럼 권할 만한 책. 책값이 스타벅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보다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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