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04] '결코 충분치 않다'

백영옥 소설가 2021. 6.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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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일은 가난한 직업에 속한다. 작가가 된 이후 다른 작가들과 투자에 대한 얘길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작가들을 만나면 해외 계좌를 만든 이야기부터 주식 스터디, 투자 서적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각자의 투자 실패나 성공담을 듣고 있으면, 나만 안 하는 건가 하는 묘한 불안과 안도가 동시에 새어 나온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의하면 현대인들이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경험에서 자신이 배제되는 것이다. “남들은 다 하고 있는데 나만 못 하나?”라는 소외 공포는 부동산, 주식, 암호 화폐까지 이어진다. 카페에서 듣게 된 암호 화폐 투자기 속에는 ‘막차’와 ‘기회’라는 말이 혼재돼 있었다. 암호 화폐 폭락으로 수십 억을 잃게 된 경제 전문 기자의 기사가 헤드라인에 있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가상 화폐로 달려가는 건 부모 세대와 달리 그들이 1~2%의 경제성장률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예측 가능성에서 온다. 지금의 집단적 불안은 불확실한 미래에서 온다.

지금의 가난은 과거의 절대적 가난과 다르다. 이제 학교 동기나 회사 동료와 비교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방 소도시에 살아도 전 세계의 유행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달까지 가자’고 외치는 일론 머스크와 24시간 연결된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결코 충분치 않다’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무리 벌어도, 아무리 잃어도,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린다. 부와 가난이 과거보다 훨씬 심리화됐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에 ‘몰빵’ 하듯 뛰어들었다가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지인 중에도 이번 변동성 장세에서 가상 화폐로 큰돈을 잃은 사람이 있다. 실패는 흔하고 성공은 희귀한 시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분산 투자’라는 말이 통용되는 건 결국 리스크로부터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기괴한 역설 같지만 ‘몰입’에도 ‘분산’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절에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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