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또 다른 '이 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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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다는 이 노래는 한편으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 중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로 들렸다.
이 중사가 겪은 '미친 세상'은 절망적이게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 중사의 죽음이 알려지고 난 뒤 또 다른 '이 중사'들이 수면 아래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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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이 중사를 보호해야 할 공군의 성추행 대응 매뉴얼도 무용지물이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비밀 유지 의무 △가해자·피해자 우선 분리 △피해자의 신고 등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 금지 등의 부대 관리 훈령은 거꾸로 작동했다. 공군은 피해 사실을 접수하고 이틀 후에 피해자 조사를 했고, 가해자 조사는 사건 발생 15일 뒤에나 이뤄졌다.
그러는 사이 이 중사는 홀로 공군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맞서야 했다. 성추행 정황이 담긴 블랙박스 파일을 직접 제출하기도 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성 고충 상담관과 22회의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이 중사는 지난달 22일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도 공군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중사의 신상정보뿐 아니라 사망 전 그간의 피해 사실을 남긴 동영상의 내용이 내부에 퍼졌다. 공군의 부실한 수사에 문제를 제기한 유족에게는 ‘악성 민원인’이라거나 ‘시체 팔이 한다’고 비난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 중사가 겪은 ‘미친 세상’은 절망적이게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 중사의 죽음이 알려지고 난 뒤 또 다른 ‘이 중사’들이 수면 아래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가 다른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확인됐고, 육군 특수전사령부에도 성추행 피해자에게 회유·압박이 가해진 경우가 있었단 게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에는 이런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부대 내 성희롱·성폭력 관련 고충이 제기됐을 때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는 문항에 긍정적으로 답한 여군 비율은 48.9%를 기록했는데 2012년 실태조사(75.8%)보다 크게 감소한 수치였다.
문제는 이런 병폐가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군대에 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차 가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지금도 한 유명 포털 사이트에는 ‘공군 성추행 피해자’의 ‘신상’이나 ‘얼굴’을 찾는 연관 검색어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이 중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미친 세상’을 바로잡아야만 한다.
이종민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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