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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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미국의 남부 출신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란 단편을 읽고 꽤나 충격을 받았다.
사랑에 빠진 에밀리는 사랑을 잃는 비극보다 스스로 살인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사랑이 상호 관계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 20대 살인자의 사랑이란 과녁을 벗어난 비틀린 욕망일 따름이다.
사랑이란 타인을 빌려 기쁨과 의미를 빚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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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집착을 사랑과 혼동 말아야
젊은 시절에 미국의 남부 출신 작가인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란 단편을 읽고 꽤나 충격을 받았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인데, 주인공 에밀리는 몰락한 명문가의 딸이다. 에밀리는 세월과 더불어 퇴락하는 대저택에 칩거하다가 일흔넷에 죽는다. 호기심에 찬 이웃들이 2층 침실에서 찾아낸 것은 그녀의 희끗희끗한 철회색 머리칼과 백골로 변한 한 남자의 사체다. 백골은 실종된 호머 베른의 것이었다. 도로 포장 공사장 현장감독으로 온 베른이 자신을 배신하고 떠날까 두려웠던 에밀리는 그를 살해하고 수십 년 동안 한 침대에서 잠이 들곤 했다.
사랑이 한 대상을 향한 열정의 과도함에서 움튼다지만 과잉 집착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이 상호 관계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 20대 살인자의 사랑이란 과녁을 벗어난 비틀린 욕망일 따름이다. 사랑은 본질에서 타자와의 다정한 협업이고, 둘만의 무대에서 펼치는 정념의 정치학이다. 하지만 타인의 의지와 기대에 대한 보살핌 없이 제 감정이 시키는 대로 달려 나가는 스토킹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괴롭힘이고 사악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는 말은 하지 말자. 누군가를 향한 소유 욕망에서 시작한 괴롭힘을 미화하지도 말자. 광기는 나태와 의욕상실에 대조되는 정념의 기이한 과잉 지속이다. 이것은 사랑으로 과대 포장한 격렬함이고, 자기모순과 폭력을 낳는 병적 집착이다. 광기로 무장한 괴물이 벌이는 스토킹 범죄는 한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무참하게 파괴한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의 도주이자 동시에 대상을 향한 도주라면, 광기는 그 도주가 좌절할 때 파열하듯이 솟구치는 분노의 한 양태다.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분노의 극단에 살인 행위가 있다.
사랑이란 타인을 빌려 기쁨과 의미를 빚는 행위다. 사랑은 미지를 향한 모험이고, 불투명한 미래에 제 상징 자본을 거는 위험한 투자다. 인류는 그런 모험과 투자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지구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사랑은 세월의 풍화 속에서 바래지고 모서리가 깨져나갔다. 빛이 바래고 의미가 퇴색되었다 해도 사랑은 여전히 인류의 발명품 중 가장 가치 있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다 똑똑하고 올바른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사랑은 영혼의 얼빠짐에서 시작하는 미친 짓이다. 그것이 수수께끼 같은 위험한 광기를 품고 있음도 잊지 말자.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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