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혼자와 우리
함께 하는 일의 의미 잊어버려
팬데믹 시대에 혼자인 우리들
이제 '더불어 사는 혼자' 회복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 또한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낸 지 일 년 반이 넘어간다. 책을 추천하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시내로 나가는 것 외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동네를 벗어나는 일도 극히 드물어져버렸다.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강의는 줌으로 대체, 영화는 스트리밍 시스템으로 보고 장도 대개는 새벽배송 등으로 주문한다. 여행을 못 가고 지인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도 어느 결엔가 희미해져버린 듯하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무덤덤한 마음까지 들 때도 있다. 그러니까 줄곧 혼자. 한 선배에게 이런 속내를 보이자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그럴 수 있겠으나, 우리는 그러지 말자. 그 문장을 보는데 ‘우리’라는 단어가 새삼 눈에 밟혔다.
팬데믹 시대에 시인은 혼자인 우리들, 혹은 혼자 지내는 이들을 ‘혼자’라고 명명(命名)했다. 글쓰기에서 명명법은 대단한 효력을 지닌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리니까. 시를 읽자마자 즉각 나는 ‘혼자’가 돼버린 듯했다. 시에 나오는, 혼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 입구에 걸린 화이부동(和而不同), 존이구동(存異求同)이라는 붓글씨에 눈길도 주지 않는 그런 혼자.
‘시인의 말’에 작가는 ‘혼자의 팬데믹’이란 짧은 시를 덧붙였다. “이 낯선 처음이 마지막인지/ 아니면 이것이 진정 새로운 처음인지/ 혼자서는 깨닫기 힘든 혼자의 팬데믹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적어두는 메모장을 열어보니 ‘혼자 사는 사람들’이란 국내영화가 있다. 아직 상영관에 가지 않은 이유는 그 영화만큼은 혼자 보기 싫어서이다. 아니 그 영화만큼은 누군가와 같이 보러 가고 싶었다. 그것이 이번주 나의 작은 위시 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런 리스트는 또 있다. 책을 보내준 후배 소설가를 만나 저녁 먹기, ‘우리는 그러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보내준 선배와 맥주 한 잔 마시기. 집단 면역 형성 전에도, 모두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이부동도 존이구동도 옆사람과 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혼자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젠 “더불어 사는 혼자”에 대해 숙고해야 할 시간이 온 것도 같지 않은가. 천천히, 신중하게. ‘혼자의 넓이’라는 이 시집 맨 끝에 실린 시의 제목은 이렇다. “혼자가 연락했다.”
조경란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영재, 입장 삭제 ‘줄행랑’…“처형에 몹쓸짓, 부부끼리도 안 될 수준”
- “100인분 예약 후 당일 ‘노쇼’, 음식 버리며 울컥”…장애인체육회 결국 보상
- 박명수 “주는대로 받아! 빨리 꺼져”…치킨집 알바생 대학 가라고 밀어준 사연 감동
- 아이 보는데 내연남과 성관계한 母 ‘징역 8년’…같은 혐의 계부 ‘무죄’ 왜?
- 배우 전혜진, 충격 근황…“얼굴이 콘크리트 바닥에…”
- 반지하서 샤워하던 여성, 창문 보고 화들짝…“3번이나 훔쳐봤다”
- "발가락 휜 여자, 매력 떨어져“ 40대男…서장훈 “누굴 깔 만한 외모는 아냐” 지적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