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비밀번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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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방문하지 않았던 웹사이트에 접속할 일이 생겼다.
나는 이제껏 내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나 장소, 혹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비밀번호로 정하고는 했다.
연애할 때 친구의 연인은 자신의 이메일 비밀번호를 친구 이름으로 설정해놓고 그것을 공유했단다.
친구가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이 연인의 이메일 비밀번호로 쓰이지 않게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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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내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나 장소, 혹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비밀번호로 정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하고 중요했던 무엇인가를 불과 몇 년 후에 지금처럼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짐작하지도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곤혹스러웠다.
문득 저 까마득한 대학 시절, 한 친구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다녔던 기억이 났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았다. 친구는 그것을 수첩에 받아 적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답을 찾아 다녔다. 그 이유가 헤어진 연인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연애할 때 친구의 연인은 자신의 이메일 비밀번호를 친구 이름으로 설정해놓고 그것을 공유했단다. 이별 후에도 친구는 습관처럼 연인의 이메일에 로그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밀번호가 바뀐 것을 발견했다. 오기가 생긴 친구는 ‘비밀번호 찾기’를 시도했다. 그것은 사용자가 정한 주관식 질문에 사용자가 정한 답을 맞혀야 새 비밀번호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었는데, 연인이 정한 질문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 애썼으나 친구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바뀐 비밀번호의 견고한 벽 앞에서 자신이 더는 연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비로소 질문을 멈추었다.
그렇다. 비밀번호의 본질은 ‘번호’가 아니라 ‘비밀’에 있다. 별것 아닌 숫자와 문자들, 그 별것 아닌 배열 너머에 별것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 특별한 기의의 빛이 바랠 때, 그리하여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될 때 기표는 버려지고 사라진다.
세상에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만큼 불변하는 진리가 또 있을까. 안다. 알지만, 비밀이었던 것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목도하는 일은 애달프다. 친구가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이 연인의 이메일 비밀번호로 쓰이지 않게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 순간처럼. 오늘의 비밀번호는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 새삼 자문해보며 나는 옛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별수 없이 ‘비밀번호 찾기’ 메뉴를 클릭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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