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인정한 '미국 최고 단편' 수록 [책과 삶]
[경향신문]
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서창렬 옮김
현대문학 | 488쪽 | 1만6000원
제프리 유제니디스(61)는 과작(寡作)의 작가다. 1993년에 첫 장편소설 <처녀들, 자살하다>를 펴낸 뒤 <미들섹스>(2002), <결혼이라는 소설>(2011) 등 모두 세 편의 장편만을 출간했다. 이 세 편만으로 퓰리처상, 메디치상 등 유명 문학상을 수상했다.
<불평꾼들>은 2017년 발표한 유일한 단편집이다. 지난 30여년간 각종 매체에 발표한 단편 혹은 미발표 단편 10편을 묶었다. 발표 시간의 간극이 큰 만큼 단편들을 꿰뚫는 주제는 없다. 작가 스스로도 ‘믹스드 백’(mixed bag)이라 표현했을 정도다. 다만 어느 작품 하나 간과하기 힘들 만큼 빼어나며, 현대인 삶의 단면을 위트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공통점은 있다.
표제작 ‘불평꾼들’은 어머니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수십년간 우정을 이어온 두 노년 여성이 등장한다. 한 여성의 건강이 나빠지자, 다른 여성은 그를 돕기 위해 아들들은 실행하지 못하는 결단을 내린다. 기억과 지각을 조금씩 잃어가는 노년의 삶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베이스터’는 임신을 위해 남성 정자를 구하는 40대 비혼여성 이야기다. 이 여성은 임신을 위한 떠들썩한 파티를 연다. 파티에 초대받은 전 남자친구는 화장실에 있는 정액 담긴 컵을 보며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항공우편’은 동료 작가 애니 프루가 ‘미국 최고의 단편’으로 꼽은 작품이다. 인도 등 아시아 등지를 여행하던 서양 청년이 큰 병에 걸렸음에도 모든 의학적 처치를 거부한 채 단식을 통한 자연 치유를 기대하는 내용이다.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청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리석은 것인지, 영성이 강한 것인지 모호하지만, 그런 삶을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만은 생생하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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