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꿈에 시달리는 동물에게 내려진 진단명 '멸종'..묘약을 기다리는 슬픈 현실 [그림 책]
[경향신문]
그림자의 섬
다비드 칼리 글·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웅진주니어 | 64쪽 | 1만4000원
어느 이름 없는 숲속에 ‘꿈의 그늘’이 있다. 왈라비 박사는 이곳에서 숲속 동물들을 치료하는 뛰어난 의사다. 진료 과목은 ‘악몽’. 오늘도 꿈의 그늘에는 환자들이 가득하다.
가시두더지는 거대한 발에 짓밟히는 꿈을 꾸었고, 웜뱃의 꿈에는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괴물이 나타난다. 에뮤는 시커먼 어둠에 밤새 추격당하는 꿈을 꾸고, 주머니쥐는 꿈속에서 사나운 고함 소리에 고통받는다. 동물들의 사연을 들은 왈라비 박사는 믿음직스러운 딩고 시리오와 함께 악몽 사냥에 나선다. 탁월한 솜씨로 처방을 내리는 왈라비 박사에게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찾아온다. “꿈을 꾸면, 텅 비어 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깊고 깊은 곳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어둠만 보여요.”
왈라비 박사는 여러 책을 살펴보지만 도통 늑대의 꿈과 비슷한 악몽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진단을 내리는 왈라비 박사. 늑대의 꿈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늑대가 처한 슬픈 현실과 닿아 있다.
<그림자의 섬>은 이상한 꿈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악몽을 추적하는 왈라비 박사의 여정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신비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슬픈 현실이다. 작가는 책 속에서 사라져가는 동물들을 조명한다.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 에뮤, 날여우박쥐 등 이미 멸종된, 또는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 꿈을 매개로 환경과 공존의 메시지를 담았다.
책의 처음과 끝을 열고 닫는 종이 위에는 128마리 동물의 초상이 그려졌다. 사라진 동물들의 얼굴이다. 마지막 늑대의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책장 너머 처연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책의 메시지도 깊지만, 그림도 매혹적이다. 바랜 프레스코화 같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회화 같기도 한 그림이 한 장 한 장 담겼다. 미술 애호가라면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아르놀트 뵈클린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신비로운 장면을 그려냈다. 작품 제목이 책 말미에 있으니 찾아보면 좋겠다.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수려한 그림책이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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