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거라고? 절망의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 [책과 삶]
[경향신문]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라단 지음
반비 | 392쪽 | 1만8000원
정신질환을 ‘마음의 병’이라 부르곤 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표현이겠지만, 정신질환자들은 단순히 ‘마음을 다쳐서’ 아픈 것이 아니다. 이들이 앓고 있는 병은 한 사람의 일생을 장악하고, 주위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흥미와 기쁨 같은 감정에 무감하게 한다. 심한 경우 몸이 딱딱하게 굳거나 저절로 떨리는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한다.
저자는 정신에 ‘병’이 생긴 상태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집중하기 위해 그동안 멸칭으로 쓰여왔던 ‘정신병’이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매일 약 20알을 복용해야 하는 양극성장애환자인 그는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병과 함께 자랐다. 조증 증상이 발현돼 낯선 곳에서 노숙을 하고 돌아다니던 그를 부모는 활발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살 시도 후 입원한 시골 의료원에선 소화제만 처방받았다. 간신히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조증 증세가 재발하면서 권고사직을 당한다.
이제 저자의 목표는 “병의 관리”이며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은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출퇴근, 식사, 휴식, 수면 같은 행위도 각고의 노력을 들여 ‘해내야’ 한다. 억울함과 박탈감이 밀려올 때마다 저자는 “육체를 내가 플레이하는 게임 캐릭터”처럼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휴식과 수면에 어떠한 가치도 이입하지 말고 기계적으로 완수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 괜찮다’는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지도,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지’ 같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대신 정신과 의사와 관계 맺는 법, 직장·학교에 적응하는 방법, 폐쇄병동 입원 후 사회에 복귀하는 법 같은 실제적 지침들을 나열한다. 절망의 끝까지 가본 사람만 말할 수 있는 기묘한 희망이 전해지는 책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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