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발 딛고 쓴 에런라이크 칼럼 37편 [책과 삶]

이유진 기자 2021. 6. 11. 21: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지지 않기 위해 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김희정 옮김
부키 | 424쪽 | 1만8000원

‘체험형 글쓰기’를 표방하는 저널리스트가 영미권 언론에 35년간 기고한 글을 묶은 책이다. 대표작 <노동의 배신>의 집필 계기가 됐던 하퍼스매거진 기고 칼럼을 비롯해 37편의 글이 실렸다. 과학자였던 저자는 첫 출산을 계기로 작가로 전향한다. 1970년 여성 의료 상황의 열악함을 고발하는 글쓰기 이후 ‘현장에서의 글쓰기’는 30년 넘게 이어졌다.

1장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서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2장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는 건강 열풍의 이면을 파헤친다. 3장 ‘지금 여기, 남성에 대하여’와 4장 ‘여성들이 계속 써야 하는 이유’에서는 페미니스트로서 남성과 여성의 시대적 문제를 짚어본다. 5장 ‘신, 과학, 그리고 기쁨’에서는 과학자 출신답게 종교과 과학에 대해 면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6장 ‘중산층 몰락 사회의 탄생’에서는 계층 양극화의 심화를 고찰한다.

저자는 빈곤과 저임금 노동의 세상을 “공포의 냄새가 밴 곳”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한 달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쓴 체험기에는 책상머리 통계에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레몬 향이 섞인 방귀 냄새”와 같은 악취가 배어 있다. 이처럼 그가 쓴 글에는 현장에 발을 딛고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오감의 경험이 녹아있다.

“열심히 일하셨나요? 더 가난해지셨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저자는 이렇게 받아친다. 가난한 사람은 빈곤을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엘리트 지식인들이 빈곤을 논평하는 세상이다. 가난하기에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쳇바퀴’는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진리 역시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은 깨닫게 한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