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평수인데.. 오피스텔 9억, 아파트는 4억8000만원

성유진 기자 2021. 6. 1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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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낳은 왜곡, 같은 단지·면적인데 가격 2배차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공급되는 오피스텔이 한 달 먼저 분양한 같은 단지 아파트보다 두 배 비싼 분양가에 나왔다. 오피스텔은 통상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떨어지고 관리비·취득세도 많이 들어 인기가 떨어지는데 분양가가 정반대로 책정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낳은 시장 왜곡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이달 17일 청약을 진행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공사 현장.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0억원 이상 저렴해 ‘로또 청약’으로 불리지만 분양가가 워낙 높아 중도금 대출은 물론 잔금 대출까지 사실상 불가능해 현금 부자들만의 경쟁이 될 전망이다. /장련성 기자

11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오는 16일 청약을 접수하는 ‘동탄역 디에트르 퍼스티지’ 오피스텔 전용면적 84㎡는 최고 분양가가 9억1660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달 청약을 마감한 같은 단지 아파트 전용 84㎡ 분양가는 4억4034만~4억8867만원이었다.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주변 시세의 반값도 안 됐는데, 같은 입지에 설계나 내장재 등에서 나을 게 없는 오피스텔은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아 시세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SRT 동탄역에서 가까운 이 단지는 아파트 531가구와 오피스텔 323실이 함께 들어선다. 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최고 9억원가량 낮아 청약에 24만명 넘게 몰리며 역대 최고 경쟁률(809대1)을 기록했다. 아파트 청약에서 떨어져 오피스텔 공급을 기다리던 수요자 사이에선 “아파트 당첨자보다 5억원이나 비싸게 오피스텔을 사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작년 7월 민간 택지에서도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수도권 곳곳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1월 경기도 성남에서 분양한 ‘판교밸리자이’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가 10억7300만원으로, 앞서 분양한 아파트(8억5600만원)보다 2억원가량 높았다. 작년 말 청약을 받은 서울 도봉구 도봉동 ‘힐스테이트 도봉역 웰가’ 오피스텔 역시 전용 59㎡ 분양가가 5억5000만~6억원대로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비쌌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극심한 청약 광풍 속에 정부의 분양가 통제가 서민의 내 집 장만에 도움이 되기보다 소수의 현금 부자만 ‘로또 아파트’에 당첨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청약 바늘구멍 되자 오피스텔로 몰려

올해 1월 분양한 경기도 성남 ‘판교밸리자이’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84㎡ 분양가가 10억원이 넘어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이 나왔다. 그런데도 282실 모집에 6만5503명이 몰리며 평균 232대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들어 집값이 계속 치솟고 아파트 청약 당첨이 ‘바늘구멍’ 통과하기가 되자 비슷한 면적의 오피스텔이라도 사는 게 낫다는 수요가 몰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아파트 분양가 통제의 역설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분양가 역전은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초래한 결과다.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되면서 건설업계는 오피스텔로 몰리는 절박한 실수요를 활용해 이익을 내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가를 통제하니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대체 상품으로 이익을 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분양 대행사 대표는 “예전엔 미분양이 두려워 오피스텔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지 못했지만 최근엔 ‘비싸게 내놔도 팔린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같은 단지 아파트보다 비싼 오피스텔 분양가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서울 도심에 원활한 주택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양가를 둘러싼 시행사·조합원들과 행정기관 간 갈등이 장기화돼 신규 분양이 지체되는 일이 빈번한 것이다. 서울 중구 ‘힐스테이트세운센트럴’은 작년 8월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도시형 생활주택 487가구를 먼저 분양한 후, 아파트 535가구는 아직 분양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시행사는 지자체가 정한 분양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1만2000가구가 넘는 서울 최대 재건축 사업장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도 2017년 이주 후 4년이 지나도록 분양가 합의가 안 돼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청약 광풍 속 현금 부자에게만 기회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덜고, 인근 지역 집값까지 낮추겠다는 목적으로 작년 하반기 부활했다. 하지만 정부의 인위적인 규제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수억원 낮게 책정되다 보니 전국적으로 ‘청약 광풍’이 불었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간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서울 강남권처럼 아파트값이 비싼 곳에선 청약을 통해 현금 부자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7일 청약을 받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분양가는 9억500만~17억2000만원이다. 가장 작은 평형도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고, 입주할 때 시세가 ‘대출 금지 기준’인 15억원을 넘을 가능성이 커 잔금 대출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10억원짜리 로또'로 불리지만, 대출 없이 돈을 마련할 수 있는 현금 부자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셈이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 도입 이후 일부 아파트 분양가는 낮아진 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현실적인 분양가를 책정하면서 채권입찰제 등을 통해 시세 차익 일부를 회수해 주거복지에 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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