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윤리 없는 온라인 콘텐츠..지상파의 탐사보도가 각별한 이유

한겨레 2021. 6. 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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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새로고침][황진미의 TV 새로고침] 에스비에스 ‘그알’ 한국방송1 ‘다큐 인사이트’

프로그램 갈무리

<그것이 알고 싶다―한강 실종 대학생 죽음의 비밀>(에스비에스)과 <다큐 인사이트―팬데믹 머니 2부작>(한국방송1)을 보았는가. 보지 않았다면 당장 찾아보기 바란다. 유튜브 시대에 지상파 콘텐츠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방증하는 가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우린 유튜브만 믿어! 유튜브가 진실이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한 시민의 말이다. 지금이 유튜브 시대임을 누가 부인하랴. <개그콘서트>(한국방송2) 등 지상파 코미디가 몰락한 이유로 매체 환경 급변도 한몫했다. 개인방송 특유의 개별화된 입맛과 4차원 코드,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을 ‘올드’한 매체인 티브이가 따라가긴 힘들다. 지상파 코미디는 죽었지만, 희극인들은 유튜브 속에 자신만의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예능 콘텐츠들이 향유되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반길 일이다. 문제는 뉴스나 시사 콘텐츠까지 개인 방송화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퇴근 후 저녁 뉴스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 짬짬이 유튜브나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전달되는 뉴스를 휴대전화 화면으로 본다. 당연히 자기 진영과 관심과 입맛에 맞는 뉴스들만 골라 본다. 유튜브에는 뉴스를 취합하고 논평을 곁들인 콘텐츠뿐 아니라, 취재 및 탐사를 표방한 콘텐츠들도 많다. 자본과 전문인력이 필요치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현장으로 발 빠르게 찾아간다. 이를테면 조두순이 출소하는 현장이나 변사 사건이 일어난 한강공원 같은 곳 말이다. 취재와 탐사에는 무엇을 어떻게 다룰지 선별하는 저널리즘의 윤리가 요구되지만, 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조회수가 곧 현금이 되는 즉물적인 감각이 지배할 뿐이다.

한강 변사 사건 뒤 한달 동안 유튜브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무분별하게 제기된 의혹을 기존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유족의 애통함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장작이 되고, 아마추어 추리와 스토리텔링이 기름을 부으며 놀라운 화력이 만들어졌다. 이때 <그것이 알고 싶다>가 나섰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등판은 사건의 의혹을 풀어주길 원하는 시청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사건의 의문을 파헤치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재현하는 일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가장 잘하는 분야이니 말이다. 시작은 그의 죽음이 얼마나 애통하며, 그 슬픔에 공감하고 수사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제기된 의혹들이 하나하나 힘을 잃었다. 특히 공개된 영상 속 두 친구의 모습은 무척 친하고 즐겁게 취해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토막기사나 사진을 통해서는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그날의 분위기다. 제작진은 현장검증하듯 한강에 더미를 입수시켜보고 목격자들 말대로 물소리가 들리는지 실험해 보였다. 여기에 범죄전문가들의 인터뷰로 쐐기를 박고,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들에 의도적인 왜곡이 있음을 영상 전문가를 통해 분석해냈다. 풍부한 자료와 깔끔한 편집으로 부풀려진 의혹들을 하나씩 격파해내는 탐사 보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방송 후 유족이 제기한 일부 지엽적인 오류에 대해선 즉각 사과하였다.

일각에선 경찰 수사 결과를 반복하는 편파적인 방송이었다고 평한다. 그러나 계속 의혹을 제기하려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수준에서 반박이 이루어져야 함을 기준처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던 이들이 방송 후 의혹을 거둔 건 아니다. 음모론의 목록에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는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 때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는 혼탁해진 매체 환경에서 언론이 할 일을 하였다. ‘황우석 사태’ 때 대중의 확증편향에 맞서 진실을 보도하였던 <피디수첩>(문화방송)에 버금갈 만큼 용기 있는 행보였다.

프로그램 갈무리

<팬데믹 머니>는 지금 일어나는 세계사적 격변을 직시하도록 일깨우는 천기누설급 콘텐츠였다. 1부 ‘돈의 법칙’은 팬데믹으로 실물경제가 얼어붙었지만, 자산 시장에는 돈이 흘러넘치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를 이해하려면 ‘무제한 양적 완화’라는 ‘전대미문의 화폐 실험’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에 의해 뿌려진 천문학적 달러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집값과 원자재값이 폭등하고 있다.

2부 ‘시그널’에서는 미국이 달러를 이용해 세계 시장을 지배해온 원리와 미국의 경제 위기가 신흥국가의 경제 위기로 전가되어온 역사를 짚어준다. 199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와 한국의 외환위기도 그 일환이었다. 팬데믹 이후에는 인플레이션과 엄청난 양극화가 예정되어 있다. 지금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천애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그러나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경제 위기가 초래될 수 있으니 무리한 부채는 유의해야 한다. 전세계적인 화폐 실험이 단행되는 동안 각 경제 주체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요컨대 인플레이션의 쓰나미에서 내 가족을 지키고, ‘벼락거지’ 신세를 면하려면 무엇을 할지 결단해야 한다.

물론 이런 내용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도 많다. 하지만 유튜브의 특성상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른다. 지상파 채널이 천기누설에 가까운 진실을 화려한 그래픽과 전달력 좋은 배우의 내레이션에 얹어 알려주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경고에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 역시 당신의 책임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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