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식 깬 '3無 전략'..이준석, 공정·실력·변화로 정치판 뒤엎었다

구경우 기자 2021. 6. 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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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대표 '36살' 이준석]
☞3無 : 캠프 사무실·대량 문자발송·지원차량
돈많이 드는 대형 선거캠프 거부
지하철·ITX 등 타며 전국 유세
"MZ세대에 영남 60대도 李 찍어"
李 "朱·羅에 역할" 공존 강조도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주호영(앞줄 왼쪽부터), 조경태, 이준석, 나경원 당 대표 후보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는 선거운동 초반부터 캠프 사무실, 대량 문자 발송, 지원 차량을 없앤 ‘3무(無) 전략’으로 기존 정치권에 바람을 일으켰다. 또 공정·실력·변화를 앞세워 헌정 사상 첫 30대 제1 야당 대표가 됐다.

이 대표는 대규모 보좌진과 선거 인력을 동원하던 기존 여의도 당권 선거를 거부했다. 당원은 물론 국민들은 이런 그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정치권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이 대표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관대해져야 하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대선 후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욕부터 하고 시작하는 야만은 사라져야 한다”며 ‘공존의 정치’를 내세웠다. 이 대표는 공존을 앞세워 야권 대통합을 이뤄 대선 승리를 쟁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선거 시작부터 바람을 일으킨 이 대표의 대세는 굳건했다.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국민의힘의 선거는 당원 투표(70%)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당권에 도전한 인사들은 국회 앞은 물론 전국에 사무실과 실무자를 두는 대형 캠프를 꾸린다. 수천만 원을 들여 전국의 수십만 당원에게 선거 문자를 보내고 선거 기간 수많은 보좌진에게 둘러싸여 전국을 누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선거 출마 선언 후에도 가방을 메고 지하철과 ITX 등 열차를 타고 선거운동을 다니며 기존 정치권에서 행해지던 ‘매머드 선거 캠프’라는 여의도 선거 공식부터 거부했다. 이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소위 “‘실탄(돈)’이 없으면 선거를 할 수 없다”는 관행을 깨고 약 1억 원의 선거 비용으로 당선된 오세훈식 ‘저비용 선거’보다 파격적인 전략이었다.

여의도식 정치와 다른 길을 걸은 이 대표는 곧바로 정치권 변화의 중심이 됐다. 선거 내내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보이며 ‘이준석=변화’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전통 보수 지지층인) 영남의 60대도 당 대표로 이준석을 택했다”며 “2030으로의 세대교체 선언”이라고 ‘이준석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사회 갈등의 조정 기능이 상실되고 부동산 등 민생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이 청년 정치인 이 대표에 대한 지지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특히 취업난과 자산 격차에 분노하고 있는 2030세대는 이 대표가 내세운 ‘실력주의’에 호응했다. 2011년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재로 영입해 정치권에 들어선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낙선한 ‘0선’으로 보수정당의 주류인 ‘영남권·중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대표는 선거 기간 진행된 TV 토론에서 중진 후보들이 지적한 계파 논란과 관록 부족 등을 거침없는 언변으로 이겨냈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실력에 시대적 가치인 ‘공정’을 더하면서 청년층의 굳건한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는 공정과 경쟁의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조직을 꾸린 뒤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고 주요 당직을 나누는 관행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비전 발표회에서 “당직이든 공천이든 못 나눠서 공천 학살을 자행하고 미래 세대에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 헛공약만 남발했다”며 “당직을 약속한 후보는 사퇴하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지금 젊은 세대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2년·3년을 수험 생활한다”면서 주요 당직을 공개경쟁으로 선발하겠다고 약속하며 ‘낙하산 당직’과 ‘공천 나눠 먹기’ 등 불공정한 관행을 혁파하겠다고 했다. 실력과 공정을 앞세워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정치권에 태풍이 됐고, 결국 이 대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30대 교섭단체 정당의 대표가 되면서 역사를 다시 썼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30대 당수는 오스트리아와 핀란드 정도밖에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30대 지도자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고 강조했다.

당수에 오른 이 대표는 ‘공존의 정치’를 내세웠다. 이 대표는 혈혈단신으로 당 대표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중진들과 격한 신경전을 벌였다. 또 선거 기간 내내 이른바 ‘탄핵 정국’ 이후 정치적 행보를 함께한 유승민 전 의원에게 묶여 ‘계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공존’을 앞세워 선거 기간 분열됐던 당심을 수습하고 나아가 대선의 선봉장으로 정권 교체를 위한 야권 대통합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하며 “우리의 지상 과제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쟁자였던 나경원 후보와 주호영 후보에 대해 “중차대한 역할을 부탁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양한 대선 주자 및 그 지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당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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