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인식 판결문, 학교·군부대 IT특강..법원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는 이유죠

송광섭,이승윤 2021. 6. 1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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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법원의 IT혁신가'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 최고 IT 전문가인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서울 서초구 청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 판사는 "머지않아 알파고 판사가 등장할 것"이라며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이해해야 `사고의 근육`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
스마트폰용 '헬스'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얼마나 걸었는지 본다. 하루 평균 1만보 이상을 걷는데, 오늘은 다행히 더 걸었다. 성취감도 잠시, 하루 평균 3만보를 걷는 친구를 발견했다. "조금 더 걸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카카오톡' 앱 친구 수는 수천 명이 넘는다. 그간 거쳐온 근무지의 직원 연락처가 모두 담겼다. 손으로 일일이 입력한 건 아니다. '엑셀'로 된 연락망을 동기화할 뿐이다. 스마트폰에는 평소 작성해둔 음성 자동인식 메모가 가득하다. 음성 자동인식 메모를 책상 위 PC 모니터 화면과 연동시켜 문서 작업을 한다. 키보드를 만질 필요도 없다. 수백·수천 페이지 분량의 문서가 뚝딱 만들어진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63·사법연수원 14기)의 일상이다.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도 2030세대보다 정보기술(IT)을 더 자주, 더 잘 사용한다. 오죽하면 현직 고위 법관에게 '법'이 아닌 '정보기술(IT)' 강의를 요청할까. '법조계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강 부장판사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청사에서 만났다.

―IT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85년부터 3년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중형 서버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3년간 '파스칼' 같은 코딩 언어를 익하고 컴퓨팅 세계에 본격 입문했다. 1988년 법관 임관 후에는 사비로 'XT PC'를 조립품으로 구입해 업무에 활용했다. 그렇게 IT에 몰입하게 됐다. 특히 IT를 활용해 방대한 자료를 구축하고 관리했다. 1996년 배석판사 시절에는 사직을 결심한 법관들이 자주 찾아왔다. USB나 외장하드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내 개인용 PC에 있는 자료를 복사해 가려 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동료들이 원하는 자료를 담아 FX 데이터 전송 케이블로 나눠줬다.

―요새는 IT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엄청난 속도로 법원 업무를 처리한다. 노트필기 앱인 '에버노트'와 음성인식(에버노트 고유 기술이 아닌 범용 기술), PC 자동 음성 입력, 문자인식(OCR) 등을 매일 사용한다. 판결문 작업 시에는 구술로 작성한다. 음성이 글자로 바뀌면 오탈자만 확인하면 된다. 출력물을 판결문에 첨부할 때도 직접 타이핑하지 않는다. 사진만 찍으면 문자로 변환된다. 미국 법률 논문을 인용할 때도 어려움이 없다. PDF 파일을 번역기에 돌려 한국어로 본다. 여기에서 한 가지 팁을 말하자면 영어를 한국어로 바로 번역하는 것보다 영어를 일본어로 바꾼 뒤 일본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정확도가 더 높다. 영어와 일본어 간 정보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외국 판사에게 실시간으로 연락할 때도 카카오톡에서 '시스트란'이라는 AI 번역 앱을 활용하면 메신저로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2030세대보다 IT를 더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새로운 IT를 배우는 데 익숙하다. 최근에는 '구글'을 활용해 최신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입수하고 있다. 일례로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 2월부터는 스마트폰으로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대만 등 10여 개국에서 나오는 코로나19 관련 외신을 매일 아침 보고 있다. 일일이 검색해서 보는 게 아니다. 구글 뉴스창 '즐겨찾기'에 각 나라의 구글 뉴스 채널을 추가한 뒤 '구글알리미' 서비스에 특정 키워드를 입력해두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해당 키워드가 들어간 관련 뉴스를 한꺼번에 받아볼 수 있다. 이렇게 들어온 뉴스들은 자동번역기를 통해 바로바로 한글로 번역된다. 그러면 그중 중요한 뉴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별해 올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집된 뉴스가 400쪽가량 모이면 PDF 전자책으로 낸다. 그렇게 만든 책이 25권, 1만500쪽에 이른다.

―지인 사이에서 '사무용 종이 추방운동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2014년 창원지법 법원장 시절 휴일에 등산을 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마산저도 연육교가 보였다. 그 느낌을 메모하려던 찰나 펜과 종이가 없었다. 주변에 다른 등산객이 없어 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전부터 설치만 해놨던 에버노트 앱을 켜고 음성인식 기록을 남겼다. 음성은 즉시 글자로 전환·저장됐고 정확도는 기대보다 높았다. '음성인식이 잘될까' 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그동안 음성인식을 사용하지 않았던 걸 그때 처음 후회했다. 그러고는 "난 이제 손으로 안 쓴다, 말로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이른 새벽마다 생각이 떠오를 때면 음성 자동인식을 이용한다. 당시 기관장 재직 4년간 음성 자동인식으로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분량만 7800쪽에 달한다. 국내외 여행을 가서도 이 앱을 활용해 매 순간을 기록한다.

―외부에서 IT 특강도 많이 하는 걸로 아는데.

▷2017년 1월 부산지법 법원장 이임 전에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공개 강연을 한 적 있다. 이 강연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참고용으로 올렸는데, 이게 입소문을 탄 덕분에 다양한 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현재 이 영상 조회수는 135만회이고, 후속 개정판 영상과 관련 소품 영상까지 합하면 조회수는 210만회에 달한다. 2019년까지 학교나 군부대, 공적 기관 등에서 매달 한 차례씩 특강을 해왔다. 특강에서는 디지털·아날로그를 융합한 생존 비책, 독서의 중요성, 최신 IT 현황, 각종 유용한 앱 사용법 등 통섭적이고 융합적인 내용을 주로 다룬다. 2018년에는 기존 강연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인생의 밀도'라는 단행본 해설서를 출간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특강을 거의 못했다.

―최근에 관심 있게 보는 IT 분야는 무엇인가.

▷최근에 가장 관심 있는 시장은 자율주행이다. 미국에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연간 4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수백 명 미만으로 감소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형외과나 보험회사, 교통사고 전문변호사 등은 타격을 받게 된다.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 단계는 총 5단계로 이뤄진다. 현재는 2~3단계에 진입해 있다. 중요한 점은 단계가 오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다. 예컨대 자율주행 도중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에서는 테슬라가 자율주행 도중 사고를 내더라도 통상 손해배상에 대한 민사책임만 묻지 형사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사회안전망을 갖추기 위한 일종의 수업료로 보는 것이다. 이미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미국 피닉스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이용해 유상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데이터가 많이 쌓이게 되고 기술 발전도 빠를 수밖에 없다. 만약 한국에서 현대차가 자율주행을 하다가 사고를 내면 어떻게 될까. 자율주행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법률도 발맞춰 가야 한다.

―자율주행은 언제 상용화될 것이라고 보는가.

▷국내에서 자율주행이 언제 상용화될지를 두고 전문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개인적으로는 5~10년 뒤에는 운전자 개입이 없는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상용화 시기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미래에는 자동차가 소유가 아닌 구독 대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집에 주차장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요새 차를 사려는 지인들을 만나면 "당신 손으로 구입하는 마지막 차가 될 테니, 차량 자율주행 옵션에 돈 아끼지 말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법률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법률이 기술 발전을 100% 따라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 사이 간극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판례 법리를 통해 좁혀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입법 미비는 보완된다. 특히 국제적 IT 관련 법률 표준에 맞는 입법이 중요하다. 법률이 기술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지나치게 규제가 심하다. 이는 빅데이터 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규제를 완전히 풀어달라는 게 아니고, 규제 수준을 국제 기준에 맞춰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상당히 강하다. 이는 규제가 심한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EU 규제가 왜 강한지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EU에는 글로벌 빅테크 회사가 거의 없다. 미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다. 그러다 보니 미국 중심의 산업을 견제하려는 EU 측에서는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EU가 아닌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 현행법에 예외 조항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법원에서는 어떠한 IT 혁신이 일어날까.

▷인공지능(AI)형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형사사건도 전면 전자소송 단계로 2024년이면 진입한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종이기록을 전자파일링해서 보는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다. 그만큼 법관의 업무처리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안에 '알파고 판사'가 등장할까.

▷알파고 판사는 기술상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하는 2045년 전후에나 나올 것 같다. 다만 머지않아 법조계 전체에 '어쏘변호사(통상 경력 10년 미만 변호사)'나 배석판사가 하던 자료정리, 판례정리, 논문정리 등을 컴퓨터 시스템이 자동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의 대형 로펌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He is…

1958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1976년 서울 용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해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14년 창원지법원장, 2015년 부산지법원장, 2017년 법원도서관장을 역임한 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한국정보법학회 회장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함께하는 법정(부제: 21세기 사법정보화와 열린 법정) △인생의 밀도 등이 있다.

[송광섭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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