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붕괴 당일 감리일지 쏙 사라졌다..소장은 곧장 잠적

진창일 입력 2021. 6. 11. 17:30 수정 2021. 6. 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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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규정 준수 여부 기록해야할 문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의 붕괴 건물 철거 공사가 규정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핵심증거인 ‘감리일지’가 사라졌다. 경찰은 감리업체 소장이 이 문서를 은폐했을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7명 사상' 의혹 풀 '스모킹 건' 행방 묘연
11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광주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현장에서 5층 건물이 무너질 당일, 철거업체 등이 안전관리규정을 지키면서 철거작업을 했는지 기록했을 ‘9일자 감리일지’를 포함해 공사 전반에 관한 감리일지 문건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감리업체는 철거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관리·감독하고 안전점검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감리일지는 감리업체가 자신이 공사 과정에서 관리·감독 의무를 다했는지 매일 기록하는 문서로 관할 지자체에 보고·제출해야 한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 건물은 지난달 14일 동구청에 건물 해체 허가가 신청됐고 같은 달 25일 허가 처분됐다. 경찰은 압수수색과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청 등을 통해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의 감리일지 확보에 나섰는데 허가 이후 모든 관리·감독 과정을 확인할 모든 문서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감리업체 소장은 사고 직후 잠적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11일 한 희생자의 여고동창생이 친구의 사진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은 철거업체가 지난 9일 오전 9시부터 건물 철거작업을 시작해 오후 4시 22분께 붕괴된 것으로 파악했다. 9일자 감리일지에는 이날 철거 공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있어야 한다.

감리업체가 9일 철거 공사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허위로 감리일지가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다. 붕괴 건물 철거작업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비상주 감리로 계약됐고 사고 났을 때는 감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었다.

경찰은 사고 하루 뒤인 지난 10일까지 “감리업체를 소환 조사하기 위해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있지만, 닿지 않아 조사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었다. 경찰은 사고 직후 공사 현장 관계자와 재개발 사업 관계자 등 10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감리업체만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A 소장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학동 붕괴 건물 감리업체 소장 A씨가 지난 10일 새벽 자신의 사무실에 들러 자료로 의심되는 물품을 챙겨서 빠져나가는 정황을 확인했다.


경찰 “붕괴 날 감리일지 은폐 가능성”

지난 9일 전날 발생한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 전 철거 현장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이 건물을 층별로 철거하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층을 부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해체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이 의심된다. 연합뉴스


철거공사 과정에서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담겨있을 감리일지를 은폐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이 지난 10일 A 소장이 다녀간 뒤 감리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는데도 9일자를 포함한 모든 감리일지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A 소장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조차 못 해보고 11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입건했다. A 소장이 ‘9일자 감리일지’ 등 핵심 증거자료를 은폐했다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상층→하층…좌측 우선 철거 순서도 어겨

17명 사상자 낸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사고 현장의 안전도 검사상 철거 진행순서 4-1-3-2번이나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프리랜서 장정필

중앙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붕괴 건물 ‘건축물 해체허가 및 해체계획서’와 현장 사진을 대조해보면 철거업체가 상층부터 하층까지 순서대로 진행해야 할 철거순서를 어긴 것으로 보인다.

또 정면에서 건물을 바라봤을 때 좌측 벽부터 무너트려야 하는 철거계획도 따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이 9일자 감리일지를 확보해야 감리업체가 철거(해제)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하도록 관리·감독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붕괴 날짜에 공사가 규정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려면 감리일지가 꼭 필요한 데 없어진 상황”이라며 “향후 수사를 통해 참사 당일 안전규정 준수 여부를 따져보고 문건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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