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붕괴 참사, 불법 재하도급 따른 무분별 철거 탓이었나

변재훈 2021. 6. 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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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서 검토·허가제, 불법 재하청 관행에 무력화
해체 허가·용역 계약도 없는 업체가 철거 도맡아
"막무가내 부쉈다" 의혹 무성..경찰 수사력 집중
[광주=뉴시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사고와 관련, 붕괴 건축물이 무너져 도로로 쏟아지기 직전 철거 모습. 철거물 뒤편에 쌓아올린 건축잔재물 위에 굴삭기를 올려 일시 철거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2021.06.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재하도급 용역 업체에 의한 무분별한 철거 공정이 꼽히고 있다.

철거계획서 검토·허가, 감리 지정 등 관련 제도가 무력한 사이,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이 부실 철거 공사로 이어져 참사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11일 광주시·경찰 등에 따르면, 동구 학동 재개발 정비 4구역 사업 시행자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9월28일 서울 소재 철거업체 ㈜한솔과 철거 용역 계약을 맺었다.

철거 공정을 도맡은 업체 ㈜한솔은 지난달 14일 '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등 건축물 10채를 6월30일까지 해체하겠다'며 동구에 허가를 신청했다.

허가에 앞서 제출한 철거계획서에는 건물 철거 작업이 순서별로 상세히 담겨 있다.

▲건물 측벽 철거 ▲최대 높이까지 압쇄·철거 ▲잔재물 깔아올림 ▲잔재물 위로 장비(유압 설비 장착 굴삭기) 올라탐 ▲5층부터 외벽·방벽·바닥 및 천장 순 철거 ▲3층 해체 뒤 장비 지상 이동 ▲1~2층 해체 ▲잔재물 정리·반출 등의 순서였다.

동구는 지난달 25일 철거 계획서를 검토한 건축사 A씨를 감리자로 지정, 허가했다. 이에 따라 ㈜한솔은 이달 7일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공사 중 붕괴된 건물이 지나가던 버스를 덮쳐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인근 상인이 촬영한 철거공사 전 건물 모습. (사진=독자제공). 2021.06.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실제 공정은 광주 지역 중장비 업체 '백솔'이 도맡았다. '백솔'은 가건물 형태 현장 사무소를 차려놓고 일용직 등 인력을 직접 고용해 철거를 벌였다. 참사 당일 붕괴 건물 내 철거 인부 4명도 모두 '백솔' 소속이었다.

허가 받은 기한은 3주 이상이었지만 속전속결이었다. 사흘 만인 9일(참사 당일) 오전께 건물 9채가 모두 헐려 붕괴 참사 건물(5층 규모)만 남았다.

인근 상인·주민들은 철거 업체(백솔)가 계획서를 지키지 않고 원칙 없이 무분별한 해체 작업을 벌였다고 주장한다.

건물 뒤편 저층부를 부숴 나온 잔재물 위에 굴삭기를 올린 뒤 여러 층을 무작위로 허문 탓에, 앞면 벽체만 앙상하게 남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정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무허가 업체'가 계획서에 담긴 해체 순서(5층→4층→3층→1~2층, 외벽·방벽·바닥 및 천장)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도 이미 뒤편 일부를 허물어 구조가 불안정한 건물 앞편이 수직·수평 하중을 못 견디고 도로 쪽으로 쏟아질 수 밖
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구역 철거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쳐 사상자 17명이 발생했다. (사진 왼쪽부터) 붕괴 건축물의 사고 전날 촬영한 철거 현장, 이날 사고 직후 모습. (사진=독자 제공) 2021.06.09. photo@newsis.com


비용 절감·공기 단축을 위한 '막무가내 철거'가 비일비재한 건설업계 관행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철거계획서 내용대로 하면 비용·기간 모두 효율적이지 않다. 건물 상층 일부만 허물고 기둥 또는 외벽을 슬쩍 건드려 통째로 건물을 쓰러뜨리기도 한다"면서 "감독당국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만큼 '크게 문제 없을 것 같다' 싶으면 요령껏 하는 수준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도 구조물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작업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감리자(동구 지정 건축사)도 '있으나 마나'였다. 감리자는 왕복 8차선과 인접한 붕괴 건물을 철거하는 참사 당일에도 현장을 비웠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광주 동구청이 지난 4월 12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을 두고 '안전 장치 미흡' 민원 대해 답변한 내용. (사진=독자제공) 2021.06.11. photo@newsis.com


동구 역시 철거 현장에 대한 실사 감독에 소홀했다. 주민들이 소음·먼지 등 민원이 제기될 때에만 4차례 가량 현장을 둘러봤다.

심지어 참사가 일어나기 두 달 전부터 '인명 사고 등이 불안하다. 이렇게 철거해도 되는지 확인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동구는 현장 점검을 하지 않았다.

안전 사고를 예견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안일한 소극 행정으로 화를 키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HDC현대산업개발·철거 업체 2곳(㈜한솔·백솔)과 감리자 등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확보한 재하도급 정황을 토대로, ㈜한솔·백솔 두 업체 간 계약 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한다. 법리 검토를 거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도 적용할 지 고려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철거 공정에 참여키로 한 업체는 계약서 상 ㈜한솔이 맞다. 그러나 현장에서 공정을 실제 수행한 업체는 백솔로 확인된다"면서 "진술이 엇갈리지만 재하도급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119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축물에 매몰된 버스에서 승객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1.06.09. hgryu77@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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