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미국은 왜 핵협상 앞두고 對이란 제재를 완화했을까

이슬기 기자 2021. 6. 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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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자금줄' 꼽았던 석유 업체·개인 제재 해제
예멘 후티 지원한 개인 및 단체에는 신규 제재
美 "행동·지위 변하면 제재도 변경한다는 원칙"
6차 핵 협상 전 사실상 '유연한 메시지' 전달
이란 대선 강경파 집권 시 추후 협상 더 멀어져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위치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 건물 앞에 이란 국기가 걸려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테러 집단의 자금줄이라는 명목으로 이란 석유산업에 가했던 일부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오는 18일 이란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기 위해 독일·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간 간접회담 형식으로 이란과 6차 협상을 준비 중인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일종의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0일(현지 시각) 이란 석유산업 관련 전직 관리 3명과 기업 2곳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성명에서 “과거 이란의 석유화학 제품 구매와 판매, 운송, 마케팅에 관여한 개인 및 기업의 행동이나 지위 변경이 확인돼 내린 조치”라며 “미국의 제재 조치가 (제재 대상의 변화에 따라) 언제가는 바뀔 수 있다는 방침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당국은 이번 조치에 대한 정치적 해석과 선을 긋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제재 해제 결정은 현재 진행 중인 핵 협상 논의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통상적 조치”라며 “제재 대상이 검증된 행동 변화와 지위 변화를 보이고 미국의 정책적 목표를 충족했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제재를 풀 수 있다는 희망을 상기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행동청(EEAS) 엔리케 모라 사무총장과 압바스 아라흐치 이란 외무차관이 지난 4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란핵합의(JCPOA) 공동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실제 이날 재무부와 국무부는 석유 분야 제재 해제 동시에 새로운 내용의 제재를 발표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자칭 안사룰라)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이란인 12명과 단체, 선박 회사를 경제적으로 제재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중동 지역에서 석유를 판매하는 기업과 중개업체의 네트워크에 관여하고 있으며 여기서 얻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후티에 건넨 것으로 미 정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번 조치를 발표한 시점상 핵 협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아인혼 무기통제분야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발표 시점 자체가 핵 협상과 명백히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한다”며 “미국이 유연한 대처를 예고하는 신호로 보인다”고 했다. 또 “미국은 합리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이란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정치 상황도 미국의 협상 시간표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독일 dpa통신은 이달 18일 열리는 이란 대선에서 극우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가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의 가장 유력한 후임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대선에서 38%를 얻었던 라이시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6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AFP통신은 최근 테헤란에서 라이시 외에 다른 후보 6명의 선거 벽보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전했다.

오는 18일 치러지는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진영 후보로 출마한 사법부 수장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EPA 연합뉴스

강경 극우파 인물인 라이시가 당선될 경우 올해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 5개국이 진행 중인 핵합의 복원 협상은 흐지부지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라이시는 1979년 친(親)미국 팔라비 정권을 축출한 이슬람 혁명 이후에도 이슬람 반대 세력 탄압에 앞장서면서 보수 진영 내 존재감을 키워왔다. 지난해 총선 결과 이란 의회 역시 반(反)미국 강경 보수파가 장악한 상황이다.

미 정부는 이란 대선 전까지 이란핵합의 협상을 매듭 짓겠다는 입장이다.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보수파가 장악하면 사실상 핵 협상에서 이란과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질 거란 우려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은 전날 싱크탱크 독일마샬펀드가 주최한 포럼에서 “이달 18일 전에 반드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고 시간도 촉박하다”고 했다.

한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핵합의는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복원을 위한 회담이 이뤄졌으나 번번이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공화당 내에선 이번 주말 6차 협상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졸속으로 합의를 체결하기 위해 제재를 풀어줬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미국은 이란의 반대로 협상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으나 독일·영국·프랑스를 통해 이란과 간접적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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