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술 발달로 덜미 잡힌 '장기 미제사건' 범인들

심민관 기자 2021. 6. 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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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증폭 기술과 DNA 데이터 구축으로 검거 사례 늘어
A씨 등 일당은 지난 2001년 9월 8일 새벽 3시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한 연립주택에 침입해 B씨의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현금 100만원을 훔쳐서 달아났다. 이 사건은 약 20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었다. 당시 기술로는 범행도구에 남은 범인들의 DNA를 검출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범인의 DNA를 검출, 용의자 A씨를 찾아낸 경찰은 지난달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 의견을 붙여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일러스트=안병현⋅조선일보DB

오랜 세월 ‘미제 사건’으로 묻혔던 사건들이 최근 과학기술 발달에 힘 입어 범인 검거가 가능해지고 있다.

DNA 수사기술 발달로 그동안 묻혔던 미제 사건 해결 포문을 연 건 지난 2019년 경찰이 1980년대 발생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진범이 이춘재라는 점을 밝혀내면서 부터였다. 이 사건 당시 현장 주변에서는 체모와 피해자 속옷, 담배꽁초, 체액 같은 증거물들이 발견됐다. 그러나 당시 국내 기술로는 DNA 검출해 식별을 할 수가 없었다. DNA를 활용한 수사기법 자체가 워낙 초기 단계였던데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DNA를 증폭시키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DNA를 이용한 수사 방법이 처음 나온 건 1986년 영국이었다. 이 수사 기법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시점은 1989년으로, 국내에는 전문가가 없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는 바로 적용할 수 없었다. 결국 1991년 일본 연구소에 이 사건을 의뢰해 범행현장 증거에 대한 DNA 분석이 이뤄졌지만 너무 소량의 DNA만 검출돼, DNA를 식별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DNA를 이용한 수사 기법은 빠르게 발전했다. 최근에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1나노그램(ng)의 DNA까지도 증폭시켜 식별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과거에는 DNA 식별을 하려면 많은 양의 시료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매우 적은 소량으로도 가능해졌다. 예를 들면 옷에 묻은 미세한 땀에서도 DNA 식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DNA 증폭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의 DNA가 가진 고유 특성인 ‘마커’를 4개까지만 식별할 수 있었지만, 최근 몇년 전 부터는 20개 이상 구별해 낼 수 있게 됐다. 과거 발생한 미제 사건들의 경우, 현장에서 발견된 DNA 시료로부터 많은 양의 마커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경우가 많아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지만 현재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경찰의 과학수사 요원이 장비를 이용해 범행도구에 묻은 지문이나 DNA 시료를 채취하는 시범을 보이 있다. /조선일보DB

DNA 감별 기술 발전과 함께 경찰과 검찰의 범죄자 DNA 데이터 구축도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수사기관에 구축된 DNA 데이터를 통해 범인(용의자)을 잡은 대표적인 미제 사건으로는 2001년 발생한 ‘제주도 부녀자 연쇄 강도강간 사건’이 꼽힌다. 강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휴지에 묻은 정액에서 발견된 DNA가 유일한 증거였는데, 관련자 중 해당 해당 DNA와 일치하는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20년간 미제로 남아 공소시효가 만료될 뻔 했지만, 최근 경찰과 검찰의 수사 데이터 공조 노력을 통해 지난 3월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 아슬아슬하게 용의자를 기소할 수 있었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전 범인을 잡기 위해 정액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인물이 검찰 데이터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다행히도 용의자의 DNA가 대검찰청에 보관돼 있었다.

용의자는 지난 2009년 5월, 강도강간 등 혐의로 징역 1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50대 C씨였다. 이 사건 해결이 가능했던 건 2010년 7월 시행된 DNA법(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덕분이었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경찰과 검찰은 살인죄, 강도죄, 강간죄 같은 11개의 강력 범죄자에 대한 DNA 자료를 채취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DNA 데이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수형자의 DNA 데이터는 대검찰청이 각각 보관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과거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경찰서마다 사건 관련자나 용의자의 DNA를 직접 채집해 각각 따로 관리했지만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순 없었다”며 “법이 시행된 2010년부터는 전국 모든 수사기관에 채집된 DNA 자료 조회가 용이해졌다”고 했다. 그는 “경찰과 검찰에 따로 보관된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면 더욱 신속한 수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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