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지고 도주할라"..페루 검찰, '독재자 딸' 후지모리 구속 요청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지난 6일 치러진 페루 대선 개표 결과 게이코 후지모리(45) 후보의 패색이 선명해지자 페루 검찰이 법원에 그의 구속을 요청했다.
후지모리는 2011년과 2016년 대선 출마 당시 브라질 대형건설사 오데브레시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으나, 선거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10일(현지시간) 페루 일간 엘코메르시오에 따르면 호세 도밍고 페레스 검사는 이날 오전 법원에 후지모리의 보석을 취소하고 '예방적 구금'(미결구금)을 집행해달라고 요청했다. 페레스 검사는 후지모리가 사건 관련 증인들과 소통해선 안 되는 등의 제약 사항을 어겼다고 밝혔다.
앞서 페루 특검은 지난 3월 후지모리의 Δ자금세탁 Δ조직범죄 Δ사법방해 Δ허위 행정신고 등 4가지 혐의에 대해 징역 30년 10개월을 구형했다.
후지모리는 이미 구치소에서 16개월을 보낸 상태에서 풀려나 대선에 임해왔다. 페루 법률상 대선 승리 시 재임 기간까지 절차가 유예될 전망이었지만, 패배가 분명해지면서 즉각 수감돼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줄곧 근소차로 패배해 온 후지모리가 이번 대선에서도 1%포인트(p) 미만의 차이로 뒤처지자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불복하고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꼽히고 있다.
페루 중앙선거관리위원회(ONPE)에 따르면 현지 시간으로 11일 0시(한국 시간 11일 오후 2시)경 99.561% 개표가 이뤄진 결과, 상대 후보 페드로 카스티요(51)의 득표율이 50.172%로 당선이 유력해지는 상황이다. 후지모리의 득표율은 49.828%로, 0.344%포인트 차로 뒤처지고 있다.
후지모리 측은 전날 페루 선거재판소(JNE)에 800여개 투표소에서 나온 20만 표를 취소하고, 30만장의 투표용지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의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열흘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돼 공식 당선자 발표는 그만큼 지연될 전망이다.
아울러 최근 전임 대통령 10명 중 7명이 유죄 판결을 받거나 부정 이득을 취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페루의 정치적 혼란도 그만큼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페루는 2016년 당선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이 취임 2년 만에 오데브레시 뇌물 스캔들에 연루돼 사임한 뒤 일주일 만에 3명이나 교체되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한국어로 '국민의 힘'으로도 번역되는 보수 민중권력당(Fuerza Popular)을 이끌고 있는 일본계 후지모리 후보는 대권에 세 번째 도전하는 유력 정치인이다. 1990년부터 10년간 집권한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인권침해, 부패 등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된 탓에 '부패한 독재자의 딸'로 불린다. 아버지 재임 당시 부모의 이혼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높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해 보수 진영을 이끌어왔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 출신 카스티요 후보는 교원 노조 장기 파업을 이끌며 이름을 알린 정치 신예로, 이번 선거에 급진 좌파 성향 페루자유당(Peru Libre) 후보로 출마했다. 주요 산업 국유화와 개헌 등 급진 정책을 공약하며 수도 리마보다는 역사적으로 정부 정책에서 배척되고 소외돼 온 아야쿠초 등 17개 지역에서 표를 모았고, 지난 4월 11일 대선 1차 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18명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로 결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카스티요 후보는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 선언을 하고, 각국 정부와 대사관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등 당선자 행보를 시작했다. 남미 대표적인 좌파 지도자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과 중도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이미 그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카스티요 후보는 유세 기간 광물·석유·수력·가스·통신 등 주요 산업 국유화를 목표로 한 국가 주도 경제 개혁을 공약하고, "우리 페루의 부는 페루에 있어야 한다. 1993년 채택한 시장사회경제로 불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국익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이를 전면 개혁해 '시장과 함께 가는 국민 경제'를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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