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3초 만에 건물 붕괴된 원시적 참극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1. 6. 11. 1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층 건물 무너져 17명 사상자 낸 '광주 참사'
교통통제도 않고 철거공사 진행해 '인재(人災)' 불러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6월9일 오후 광주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사업 공사현장에서 건물 붕괴 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원시적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4시22분쯤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20여m 높이의 5층짜리 상가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 중이던 운림 54번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10일 오후 4시 현재, 17명이 매몰돼 9명이 사망하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건물 붕괴 사고가 발생한 '학동 4구역'은 광주의 대표적인 노후주택 밀집지역이다. 주변 건물을 다 철거한 뒤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상가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붕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철거 중 무너진 건물은 대동건설 옛 사옥으로 재개발사업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텅 빈 채 방치돼 왔다. 사고 현장 주변에선 벌써부터 안전 불감증이 낳은 인재(人災)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인근 주민은 "수일 전부터 앞으로 무너질 것 같은 위험을 느꼈다"고 말했다. 

6월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며 도로 위로 건물 잔해가 쏟아져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연합뉴스
공사현장 인근 상가 CCTV에 담긴 건물 붕괴 장면ⓒ네이버 거리뷰 캡쳐

"5층 건물 휘청이더니 순식간에 버스 덮쳤다"

사고 당시 공사현장을 둘러싼 임시 구조물 일명 '비계'가 함께 무너졌다. '우르르'하는 굉음과 동시에 발생한 사고는 맞은편 버스정류장 인근 건물의 유리가 깨질 만큼 충격이 컸다. 순식간에 건물 잔해에 깔린 시내버스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졌고, 폭격이라도 맞은 듯 뿌연 먼지가 도로 맞은편 주택까지 덮쳤다. 건물 붕괴로 토사와 잔해는 왕복 8차로 도로 중 5차로까지 밀려들었다. 주민 이아무개씨(53)는 "붕괴 당시 반대편 도로에서 봤는데 건물이 휘청휘청하더니 갑자기 무너지면서 그대로 버스를 덮쳤다"며 "불과 3초 만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인근에 있던 목격자 유필숙씨(여·57)는 "지진이 나는 것처럼 '우르르'하고 땅이 울리면서 건물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이날 참변을 당한 시내버스를 뒤따르던 승용차들은 급정차해 화를 면했다. 주민 김아무개씨(56)는 "평소에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승강장 뒤에 세워진 공사 가림막으로 늘 불안했다"면서 "길 건너편에 여고가 있어 등·하교 시간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사망자 9명은 모두 버스 뒷자리 승객들로 확인됐다. 승강장에 정차 중이던 버스의 뒷좌석 쪽을 잔해들이 먼저 짓누르며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사망자 대다수가 버스 뒷좌석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앞좌석 승객들은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지만 버스 뒷부분은 건물 더미에 깔려 천장과 바닥이 붙었을 정도로 10여 초 만에 폭삭 주저앉아 상당수가 신속하게 대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철거업계는 사고 원인으로 철거계획 부실과 시공 잘못을 우선 꼽고 있다. 철거업체 한솔기업은 광주 동구청에 제출한 구조물 해체 계획서에 2층 높이까지 철거 잔재물(토산)을 쌓고 맨 위층부터 외벽에서 방벽으로 슬라브를 철거해 3층까지 철거한 뒤 잔재물을 치우고 2층과 1층을 해체하겠다고 기재했다. 하지만 이는 철거된 콘크리트 잔해가 수평균형을 무너뜨려 건물이 도로변 쪽으로 붕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방법'이라는 게 철거 전문가들의 견해다. 업계 관계자는 "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한 개 층씩 부수면서 내려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철거계획상 최악의 경우 해당 건물이 도로변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무너지게 하는 시나리오까지 포함한 공법 선택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설령 잘못돼 붕괴되더라도 사람과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변보다 대부분 건물이 헐려 공터로 남아 있는 뒤쪽이나 옆으로 붕괴를 유도하는 것이 안전상 맞는다는 얘기다. 한 주민도 "건물 왼쪽과 뒤편 등이 텅텅 비어 있었는데 넘어지지 말아야 할 곳(도로변)으로 넘어졌다"고 성토했다. 

굴삭기를 올려 철거작업을 하기 위해 건물 뒤쪽 외벽에 흙과 폐건축자재로 쌓아 놓은 토산도 사고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물이 토산에서 발생한 토압을 못이겨 무너졌다는 추론이다. 철거업체 작업자들은 공사장에서 나온 흙과 건축폐자재로 3층 높이로 토산을 쌓은 뒤 그 위에 굴삭기를 올려 건물 5층 안쪽부터 바깥 도로 방향으로 두더지 식으로 건물 구조물을 조금씩 부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에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주민 박아무개씨(53)는 "아침 일찍부터 '탕탕탕'하며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오후까지 계속 들렸다"고 증언했다. 

건물 붕괴 현장 뒤의 토산과 당시 사용한 굴삭기 모습ⓒ시사저널 정성환

건물 뒤편 토산 쌓고 굴삭기 올려 철거 작업 

일각에서는 토사를 쌓아두는 과정에서 별다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소극적인 안전 행정이 낳은 인재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고 현장 부근 일부 주민들은 재개발을 위해 3~4일 전부터 건물 뒤에 쌓아놓은 흙더미가 건물 쪽으로 기울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건물이 도로 쪽으로 쏠려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근 건물 상가에 입주한 한 주민은 "굴삭기가 며칠 전부터 쌓아놓은 흙더미 위에 올라가 작업하는 장면을 봤다"며 "관할 관청이 한 번이라도 현장에 나와 점검했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허술한 가림막도 무너지는 건물을 견디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공사 현장에는 가림막이 설치된 상태였지만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 밖에 전면 교통통제 없이 철거를 강행한 무모함도 드러났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굴삭기 1대와 작업자 2명이 있었으며, 현장 주변에는 신호수 2명이 배치된 상태였다. 공사 현장 부근 편도 차로 등에 대한 별도의 교통통제 없이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사고 발생을 운에 내맡긴 꼴이다.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철거 과정에서 쌓아올린 해체물이 건물에 횡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간과한 듯하다. 감리자 등이 이를 용인했는지 여부를 봐야 한다"면서 "굉장히 짧은 기간에 해체가 이뤄지고 관리 인원이 적다 보니 계획보다 부실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합동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하고 본격적인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선다. 올해 1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출범 이후 발생한 첫 대형 재난으로,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국수본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철거업체가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부분을 먼저 철거해 불균형이 일어났을 가능성, 통상 철제기둥을 세워 건물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가능성, 철거된 콘크리트 잔해가 남아 수평균형을 무너뜨렸을 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