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불로소득?..내로남불 외줄 탄 지분적립형 주택

전태훤 선임기자 2021. 6. 1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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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으로 포장된 장기 월세
시장 수요 따라줄지 미지수

내 집 마련의 사다리일까, 장기 월세의 또 다른 말일까.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입주할 때 분양가의 10~25%만 내고 이후 20년 또는 30년에 걸쳐 소유 지분을 늘려가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내놓기로 했지만 시작 전부터 말이 많다.

집값을 오랜 기간에 걸쳐 나눠 내는 일종의 할부 주택으로 내 집 장만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건데,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달 적지 않은 임대료를 내야 하는 월세 구조라, ‘분양 주택이 아닌 사실상 월세’란 비아냥부터 쏟아져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된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 /연합뉴스

⃟내 집으로 포장된 월셋집

지분적립형 주택은 원래 서울시가 제시한 공공분양의 한 형태인데, 주택 실수요자들이 적은 돈으로 집을 살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8∙4 공급대책에 포함된 뒤 10일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함으로써 구체화됐다.

형태는 이렇다. 분양받은 사람은 분양가의 10~25%만 내고 입주한 뒤 20년이나 30년에 걸쳐 남은 지분을 취득하면 된다. 지분 적립은 매 회 10~25%의 범위에서만 취득할 수 있다. 목돈이 있다고 잔여 지분을 한꺼번에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지분을 취득할 때는 1년 만기 은행 정기예금 이자를 더해 낸다. 지분을 100% 취득하기 전까지는 잔여 지분에 대한 임대료를 공공주택 사업자에 내야 한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80% 이하로 하고, 전매제한 기간은 10년으로 뒀다. 의무 거주 기간은 5년이다.

초기 목돈 부담이 적다는 점이 매력적이긴 한데, 시세보다 낮긴 하지만 20년 또는 30년간 임대료와 은행이자까지 붙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사실상 월셋집이다.

예컨대 10억원짜리 주택을 10%(1억원)만 내고 입주하고 30년간 지분을 단계적으로 취득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이자는 제외하고 해마다 3000만원씩 30년을 갚아야 잔여 지분(9억원)을 모두 확보해 온전한 내 집이 된다. 지분을 추가하는 만큼 임대료는 줄겠지만, 어쨌든 약정 기간까지 월세를 내야 한다.

장기 월세에 살면서 내 집 마련을 이뤘다는 ‘정신 승리’는 덤으로 가져가야 한다.

⃟민간 월세는 불로소득, 공공이 받으면 주거안정?

지분적립형 주택은 약정 기간(20년 또는 30년)이 지나야 개인 앞으로 등기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사업시행자가 월세를 받는 임대인이 되는 구조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다주택자가 여분의 주택으로 월세를 받는 것을 불로소득이라 보고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주기로 한 세제혜택까지 빼앗은 정부가 공공기관을 앞세워 월세 장사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종규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인위적으로 담보 대출을 막아두고,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으로 돌려 주택 소유자와 공공이 수익을 나눠 갖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소유자들이 집 장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주택담보대출 문턱만 낮춰도 이런 복잡한 구조의 주택공급이 필요 없다”며 “공공기관의 월세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만든 제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민간 월세를 두고 불로소득이라 몰아붙인 정부라 ‘내로남불' 논란의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수요 따라줄지 미지수

좋은 취지의 주택공급 계획이지만 시장 수요가 따라줄지는 분명치 않다. 분양받는 사람과 사업 시행자가 약정 기간 주택을 지분 형태로 공동 소유하는 구조 자체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 2009년 도입했던 토지임대부 분양제도(토지는 정부가 갖고 건물만 분양받는 주택공급)도 서울 수도권 3개 단지에 시범 적용한 이후 주거 안정에 실익이 없다고 결론이 나면서 사장됐다. 2016년에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아예 폐지됐다.

황종규 명지대 교수는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경우, 분양받은 사람이 지분만큼 수익을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 때 수익 공유형 모기지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라고 말했다.

지분 공유 기간 발생할 수 있는 개인과 사업시행자 간 분쟁거리도 수요 확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양영준 제주대 부동산관리학과 교수는 “거주 의무 기간(5년)이 지난 후 제3자에게 임대를 하려 할 때 지분 확보가 50%가 안 된 경우(최초 지분 25%+4년 후 1차 지분 15%)에 임대료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전매제한(10년)이 풀린 후 매각하게 될 경우 시세대로 받으려는 수분양자와 잔여지분을 공유하는 공공기관이 집값 안정을 이유로 시세보다 낮게 내놓으려는 이해 상충이 생길 수 있는 여지도 수요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이런 부분을 사전에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시장 혼란과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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