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계단 올라 만난 장엄함.. 700년 시간 뛰어넘은 벅찬 감동

장재선 기자 2021. 6. 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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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판을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 법보전 내부.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이 한 대장경 연구원이 들고 있는 ‘광명경’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팔만대장경’ 19일부터 일반 공개… 먼저 가 본 해인사

8만1350장 목판 촘촘히 꽂혀

제작 때부터 도서관 같은 체계

갖은 전란에도 완벽 보전 ‘기적’

자연 환기·습도조절 구조 절묘

장엄하고도 찬란했다! 그럴 거라 예상은 했으나, 실제로 보니 훨씬 더 벅찬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700년이 넘게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팔만대장경판의 숨결이 오롯이 전해졌다.

10일 오후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전(法寶殿)에서였다. 이날 해인사를 찾은 것은 오는 19일부터 일반 국민을 상대로 실시하는 ‘팔만대장경 예약 탐방제’에 앞서 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대장경판은 장경판전(藏經板殿)에 보존돼 있다. 역시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은 북쪽의 법보전과 남쪽의 수다라장(修多羅藏)을 비롯한 4개 동이 입구(口)자 형태로 이뤄져 있다. 해인사는 이번에 법보전 내부를 사상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창살 틈으로만 들여다보고 안타깝게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들의 갈증을 풀어 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불교계 인사와 학자들, 담당 공무원들이 제한적으로 들어온 적은 있으나, 문화재 보존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은 금했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이제 경비, 안전 관리 체계를 갖췄다는 판단으로 일반에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안에 들어오면 불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민족 문화의 영적인 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감염병 사태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 국민이 그 기운을 받아 힘을 내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탐방은 매주 토·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각 2차례 진행한다. 순례 대상을 초등학생 이상으로 하고 1회 최대 20명으로 제한하지만, 차츰 인원을 늘릴 예정이다.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도 운용할 계획이다. 지난 5일부터 해인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받았는데, 접속이 폭주하는 바람에 시스템이 정지됐다. 실무를 총괄하는 이석심 종무실장과 승우 스님(포교국장)은 “현재 7월 4일까지 예약을 받은 상태”라며 “시스템을 정비해서 안정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했다.

탐방객은 일주문에서 봉황문, 국사단, 해탈문, 법계탑, 대적광전, 대비로전 등을 거쳐 법보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인사 승가대 학승들이 동행하며 각 건물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날 만난 승가대 학감 법장 스님은 “1시간여 순례 코스에 각 문을 거치며 총 108개 계단이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가파르고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며 “부처님의 뜻을 어렵게 깨달아 큰 기쁨을 얻게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108계단을 디딘 후에 만난 팔만대장경판은 엄청난 희열을 안겨줬다. 가로 70㎝, 세로 24㎝의 목판이 5개 층의 판가(板袈)에 촘촘히 꽂혀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대장경판 보존국장인 일한 스님은 “각 경판에 번호가 있기 때문에 현대의 도서관 같은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이런 판이 총 8만1350장이어서 팔만대장경이다. 경판 앞뒤로 새겨져 있는 글자는 5200만 자로, 불교 경전 전체를 새겨놨다. 몽골군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막고자 고려말인 1236년부터 16년에 걸쳐 완성했다. 판에 새겨진 글자를 들여다보니 일정하고 아름다워서 추사 김정희의 감탄이 절로 떠올랐다. 추사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했다.

현응 스님은 “강화도 등에 보관돼 있던 것을 조선 초기에 해인사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이송 과정에서 훼손이 없다는 것도 기적이고, 지난 700년 동안 숱한 전란 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된 것도 기적”이라고 했다. 이런 기적을 뒷받침한 것이 장경판전의 과학적 통풍 구조다. 붙박이 살창이 환기와 온도, 습도 조절 역할을 절묘하게 해낸다. 벽면 아래와 위, 건물의 앞면과 뒷면 살창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공기가 실내에서 돌아나가도록 건축 기술을 발휘한 덕분이다. 경판의 손잡이 부분과 글자를 새긴 면의 두께를 다르게 해서 판을 세워뒀을 때 서로 부딪히지 않게 했고, 그 틈새에서 공기가 통하도록 했다. 바닥은 깊이 땅을 파서 숯,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를 뿌려 습도 조절을 했다.

장경의 온전한 보존은 해인사가 가야산 깊은 곳에 자리했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스님들이 온갖 전란 속에서도 문화유산을 지켜내려 애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도 판전 경비요원 20명과 함께 스님들이 3교대로 순라를 돌며 경판을 지키고 있다.

한편, 이날 해인사 스님 150명은 대적광전에서 ‘팔만대장경 국민개방 고불식(告佛式)’ 열었다.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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