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 >'21년 무패' 최현미 "세계최장 챔피언인데 스폰서 없어 벨트 반납할 뻔"

박현수 기자 2021. 6. 11. 10: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유일한 여자 프로복싱 WBA 세계챔피언인 ‘태극 전사’ 최현미 선수가 지난 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풍산권투체육관에서 두 팔을 벌려 챔피언 벨트를 높이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최현미는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면서 “스폰서 걱정 없이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 ‘21년 무패’ 여자 복서 최현미

초등 5학년때 北에서 복싱 시작

올림픽 준비하다가 17년前 탈북

南서 장정구선수 만나 본격 권투

18세 세계 최연소 챔피언됐지만

방어전 1억 넘는 비용 마련위해

앵벌이하듯 후원 찾아 다니기도

경기장서 애국가 나올때면 울컥

태극마크 지키려 美·日귀화 거절

韓 넘어 세계 권투史 다시 쓸 것

지난 7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이색적인 복싱 이벤트가 열려 화제가 됐다. 50전 전승을 기록한 전설의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44·미국)가 프로복싱 전적 1전 1패로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유명 유튜버 로건 폴(26·미국)과의 시범 경기였다. 결과는 메이웨더가 KO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무승부로 끝났다. 메이웨더는 비록 체면을 구겼지만 약 1100억 원, 폴은 160억 원의 대전료를 챙겼다. 이벤트 경기에 이만한 거액의 대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복싱이 인기 스포츠인 미국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국내 유일한 여자 복싱 WBA 세계챔피언인 ‘태극 전사’ 최현미(31)는 지난 2019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챔피언 타이틀 반납 위기에 몰리자 벨트를 지키기 위해 복싱 본고장인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방어전을 치를 때마다 챔피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1억여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다. 복싱 규정상 챔피언이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방어전을 치르지 않으면 벨트를 반납해야 한다.

최현미는 2008년 10월 WBA 여자 페더급(57㎏) 챔피언 결정전에서 중국 선수를 물리치고 첫 세계 정상에 우뚝 서게 됐다. 18세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챔피언이 됐고, 13년째 세계 최장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21년째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무패 복서 전설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전적은 19전 18승 1무 4KO. 2013년까지 7차례 방어전을 치렀고, 그해 슈퍼페더급(59㎏)으로 한 체급 올려 챔피언이 된 후 8차 방어까지 성공했다. 통산 15차 방어전을 마쳤다.

무서운 집념과 근성을 자랑하는 최현미는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WBA와 WBC·IBO 통합타이틀이다. 지난 5월 15일 영국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대회를 1주일 앞두고 영국의 테리 하퍼(24) 선수가 부상을 당해 경기가 취소됐다. 9차 방어전 겸 통합 챔피언 새 경기를 앞두고 다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시합 준비를 위해 일시 귀국한 그를 지난 1일 문화일보사에서 만났다.

―통합 타이틀 매치가 무산된 당시 심정이 어땠나요.

“시합을 불과 1주일 남겨두고 취소돼 너무 허무했어요. 간절히 원하고 기다렸던 시합이었기에 어떤 말로도 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요.”

―다음 시합은 언제쯤 열리나요.

“오는 7월 말에 개최될 예정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데 먼저 성사되는 쪽에서 시합하려고 해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복싱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이요. 그다음은 한 체급을 더 올려 라이트급(60㎏)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세 체급 챔피언이 되는 거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복싱 역사를 ‘최현미’라는 이름 석 자로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어요.”

그는 세계 최연소 챔피언에, 최장 챔피언 보유자, 무패 복서라는 것을 강조했다. 1991년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가 세운 국내 최고 17차 방어전 기록도 조만간 경신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은퇴하면 각종 기록을 기네스북에 등재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9년 돌연 미국으로 떠났는데, 왜 가게 됐나요.

“한국에선 복싱이 비인기 종목이어서 스폰서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방어전 치르기도 어려웠고, 타이틀을 반납할 위기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래서 복싱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큰 시장으로 가게 됐어요. 시합이 드문 우리나라와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무관중 대회가 열리거든요. 미국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집과 체육관, 트레이너도 지원해 주고 있어요.”

―페더급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했었죠.

“스폰서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문제는 페더급에선 도전하는 선수가 더 이상 없었어요. 그래서 2013년 페더급 타이틀을 반납하고 슈퍼페더급으로 한 체급 올렸어요. 그러고 나서 3개월 만에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어요.”

―복싱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11세 때인 초등학교 5학년 때요. 학교에서 달리기하는 모습을 보고 체육 선생님 친구분인 국가대표 권투 감독 눈에 띄어 발탁됐어요. 김철주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 복싱 양성반에 입학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준비하다 2004년 가족과 함께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이주했어요.”

그는 한국에 온 후 복싱을 안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연히 WBC 전 세계 챔피언 장정구 선수를 만나면서 다시 본격적인 권투를 하게 됐다. “복싱이 나에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서울체고에 진학했다. 2006년 3월 여자신인선수권 라이트급 우승을 하면서 입학 1년 만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하다 여자 복싱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아 금메달 꿈이 사라져 프로로 전향했다.

―요즘 복싱에 관심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복싱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고된 훈련이 힘들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 놓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스폰서가 없다는 거였어요. 방어전을 할 경우 장소 대여료와 심판 비용, 파이트 머니 등 1억 원에서 1억5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요. 그러나 이 경비를 후원해 주는 곳이 없어서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하는 사례도 있고, 저도 반납 위기를 여러 번 겪었어요. 매니저인 아버지와 함께 앵벌이 하듯 후원자를 찾아다녔어요. 그렇지만 복싱한 걸 후회하진 않아요.”

―우리나라 복싱 팬들과 정부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현미는 대답 대신 긴 한숨부터 쉬었다) 권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 게 너무 안타까워요. 옛날에 화려했던 그 시절까지야 바라지 않지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적절한 정부 지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복싱을 지원해 주는 부서가 없어져서 지원해 줄 수가 없다고 해요. 요즘 복싱 경기 TV로 본 적 있나요? 제가 세계 챔피언이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 1등을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 아닌가요?”

첫 원정 경기였던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열린 8차 방어전이 대한민국 복서가 미국에서 첫 방어전을 한 건데 정작 한국에서는 중계방송조차 하지 않았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에서 귀화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세계 챔피언을 지키고 싶은 생각 때문이에요. 저는 태극전사라는 데 대한 자부심이 강해요. 시합 때마다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지고 울컥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은퇴 후 꿈은 뭔가요.

“복싱에 재능있는 유망주들이 손을 내민다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제가 후원자가 없어 어려움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거든요. 후배들은 그 과정을 겪지 않도록 제가 경험한 것을 살려 돕고 싶어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계 챔피언을 13년째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모두 자국 스폰서가 붙어서 움직이는데, 왜 저만 자국 후원이 없는지 안타깝고 속상해요. 우리나라 기업 또는 정부 차원에서 관심과 응원을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는 신세대답게 성격이 밝고 쾌활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거침이 없었고, 목소리도 시원시원했다. 태극 마크를 달고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복싱 영웅’인데도 정부 지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 스포츠 정책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는 “스폰서 걱정 없이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