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최현미 >"매니저 돼준 아버지, 처음엔 '여자가 무슨 복싱이냐' 반대"

박현수 기자 2021. 6. 11. 10:4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최현미를 얘기하면서 아버지 최영춘(57) 씨를 빼놓을 수 없다.

1990년 11월 북한 평양에서 태어난 최현미의 아버지 최 씨는 고위공무원으로 무역업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호텔 셰프 출신으로 꽤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최현미가 아코디언 연주자로 음악인이 되길 원했다.

그러다 최현미가 복싱을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복싱을 하냐'며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했을 때 모습. 오른쪽서 두 번째가 최현미, 세 번째가 아버지 최영춘 씨. 최현미 제공

최현미 선수와 아버지

최현미를 얘기하면서 아버지 최영춘(57) 씨를 빼놓을 수 없다. 1990년 11월 북한 평양에서 태어난 최현미의 아버지 최 씨는 고위공무원으로 무역업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호텔 셰프 출신으로 꽤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최현미가 아코디언 연주자로 음악인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개인지도도 받았다. 그러다 최현미가 복싱을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복싱을 하냐’며 극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 목에 걸어 드리겠다’고 약속하고서야 겨우 허락을 받았다.

한국에 정착 후 복싱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난 2년간 훈련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적응도 만만치 않았다. 교과 과정이 다른 데 따른 학교생활 부적응 등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방황도 했다. 그러다 글러브를 다시 끼게 됐다.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권투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최현미에게 요즘 근심이 또 하나 생겼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버지가 지난해부터 구인두암으로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제 매니저로서 스폰서를 찾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마음이 아파요. 미국에 있으면서 제일 걱정이었던 건 아빠 건강이었어요. 그나마 요즘 조금 좋아지셨는데, 언제 재발할지 몰라 병원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학구열도 뛰어나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부지런히 했다.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를 졸업했다.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걸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요. 재수를 하며 당당히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어요.” 내친김에 고려대 일반대학원 사회체육지도 전공 석사과정에도 진학해 코스는 이미 끝났고,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