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1970년 한강맨션의 등장.. 아파트, '욕망'이 되다

오남석 기자 2021. 6. 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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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파트는 관사나 사택, 임대주택처럼 ‘사회적 인프라’의 성격을 띠다가 점차 욕망의 대상으로 변모해 왔다. 위부터 고급 아파트 시대를 처음으로 연 서울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아파트(1970년 준공), 일제강점기 미쿠니상회 사택으로 쓰인 내자동 미쿠니아파트(1935년 준공), 해방 후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로 지어진 도화동 마포아파트(1962년 준공)의 모습. 마티 제공

■ 한국주택 유전자│박철수 지음│마티

문화주택·영단주택·도시한옥…

한국주택 100년史 족보 훑어

“주택도 생명체처럼 출현·소멸

우열 다투면서 변형 거쳐 전승”

1970년대 아파트시대 본격화

주택 유형의 ‘절대 우세種’ 돼

“단지형 ‘빗장 공동체’로 변모

한국사회 모순·갈등의 시발점”

지난 1962년 12월 6개 동으로 1차 준공된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 마포아파트. 그러나 첫 임대 공고 당시 입주 신청자는 공급 세대수의 10%에도 못 미쳤다. 사람들은 연탄가스가 배기관을 통해 6층으로 올라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이런 염려를 무마하고자 실험용 쥐 6마리를 방에 넣고 하룻밤이 지난 뒤 아무 이상 없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람과 쥐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주공 건축부장이 술을 마시고 가스가 가장 많이 샌다고 알려진 방에 들어가 하루를 지냈다. 그런 뒤에야 450세대가 입주를 완료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새 책 ‘한국주택 유전자’에 나오는 이 일화는 60년 전만 해도 아파트가 지금처럼 부러움과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주택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출현과 변이, 갈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0년 남짓한 시간을 횡단하며 한국주택의 유전적 형질과 그 변화 과정을 살폈다”는 말이 보여주듯, 저자는 책에서 한국 주택의 ‘보학(譜學)’을 펼쳐냈다. 가문의 계보를 따지듯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2021년 한국인이 살고 있는 집이 “일일이 다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주택 유형의 서로 다른 형질들이 우열을 다투며 변형 과정을 거쳤고, 여기서 살아남은 인자들이 결합해 오늘까지 전승된” 결과물인 까닭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에 모습을 드러내 이름을 얻은 주택 유형은 100여 가지에 달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관사와 사택, 부영주택, 문화주택, ‘아파-트’, 도시 한옥 등이 개발됐다. 해방과 6·25전쟁 등 혼란기에는 각종 원조와 국채로 시급히 지었던 영단주택, 미군 가족용 DH(Dependent House)주택, 전재민·난민주택, UNKRA(유엔한국재건단)주택, ICA(미국 국제협력처)주택, AID(미국 국제개발국)주택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부터 전후(戰後)를 상징하는 재건주택과 희망주택·부흥주택, 외화벌이의 일환이었던 외인주택, 도시의 얼굴로 떠오른 상가주택 등이 1950년대 말까지 새롭게 등장했다.

1950년대 말은 아파트 시대가 열린 시기이기도 하다. 종암아파트(1958년)와 개명아파트(1959년)를 필두로 서민아파트, 시민아파트, 상가아파트, 맨션아파트, 주공아파트 등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아파트는 여러 가지 형태의 주택 가운데 ‘절대 우세종(種)’의 자리에 올랐다. 서구 선진국에서 아파트가 저소득층의 밀집 주거 공간, 심지어 우범지역의 이미지를 띠는 것에 비춰보면 이는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아파트의 위상이 처음부터 이렇게 높았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미쿠니(三國)아파트 등 관사용으로 처음 등장한 아파트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래를 기약하며 임시방편으로 숨을 돌리는 서민용 거처로 여겨졌다. ‘뜰도 없는 고층 집’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때까지 대부분 아파트가 공무원아파트·사원아파트이거나 공적 자금으로 지어진 임대아파트였음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 아파트를 욕망과 질시의 대상으로 바꿔놓은 것은 1970년 서울 동부이촌동에 들어선 한강맨션아파트다. 마포아파트(9평)는 물론 공무원아파트(20평)보다도 훨씬 넓은 27~55평형 660세대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교육 시설과 어린이 놀이터, 정원, 주차장, 쇼핑센터 등을 갖췄다. 여기에 한국 최초로 알루미늄 새시와 상시 온수 공급 시스템을 갖췄다. 현재의 아파트 단지에서 나타나는 ‘빗장 걸기’와 ‘구별 짓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강 조망권까지 갖춰 “51·55평형에는 큰 회사 사장이, 32평형에는 회사 중견급 간부나 탤런트·문인·영화배우가, 가장 작은 27평형에는 신중산층 신혼부부가 산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처음으로 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설치하고 선(先)분양 방식으로 민간 자금을 유치해 지은 아파트이기도 하다.

한강맨션아파트의 성공 이후 삼익·한양·라이프 등 민간 건설업체가 잇따라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8년 11월 국내 첫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잠실주공아파트가 준공되면서 아파트는 한국 도시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한강맨션아파트는 고급 또는 고급이 되길 희망하는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모순과 갈등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주택은 권력의 의도와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일제가 주도해 만든 관사와 사택 단지는 주택에도 위계에 의한 계열화와 표준화를 강제하는 시발점이 됐다. 5·16 쿠데타 직후 지어진 마포아파트는 전통적 생활양식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던 ‘박정희식 개발’의 전형을 보여준다. 1980~1990년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는 사이 변두리는 다세대·다가구주택과 반지하주택 등 수준 이하의 집들이 서민 주거공간의 자리를 차지했다. 주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고려하지 않은 ‘권력의 논리’의 폐해다.

책은 1·2권 총합 1362쪽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한국인 주거 공간 100년 아카이브’다. 도판만 1150컷. 이 가운데 80%는 단행본으로는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세계의 모두였거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곳일 수밖에 없는 보통의 집”을 다뤘다고 말한다. 부동산 정책을 고민할 때 중심에 둬야 할 ‘집의 의미’다. 1권 708쪽, 2권 654쪽. 각 권 3만3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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