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담동 아파트는 받는 혜택 안암동 원룸은 못받는 이상한 부동산 정책

김송이 기자 2021. 6.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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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가 월 500만원인 청담동 아파트 1채를 임대하는 사람과 대학가인 안암동에서 월 40만원인 원룸 5채를 운영하는 임대사업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들의 월 임대수익은 각각 500만원과 200만원이다. 누가 생계형 임대사업자에 속할 가능성이 더 클까.

현재 여당에서 논의 중인 기준대로라면 임대료가 월 500만원인 주택 1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생계형 임대사업자로 분류돼 혜택을 볼 가능성이 더 크다. 생계형 임대사업자가 되려면 주택을 5채 미만, 즉 최대 4채까지 보유해야하기 때문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는 다세대·다가구, 단독주택 등 일반주택 임대사업자 신규 등록을 폐지하기로 했다. 2020년 7월 이전 등록한 기존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축소한다고 했다. 이 방침대로라면 의무 임대기간이 끝난 임대사업자는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임대사업자들의 반발이 심하자 여당은 한발 물러섰다. 생계형 사업자에 한해 종부세 혜택을 유지하고 신규 등록도 허용하기로 했다. 김진표 민주당 특위 위원장은 최근 “5채 미만을 가지고 특히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생계형으로 소규모로 임대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그 제도는 그냥 계속 유지시켜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5채 미만·60세 이상이 생계형 임대사업자 기준이 되는 것에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임대사업자 중에 은퇴한 고령자들이 많다는 이유는 애써 이해해본다고 치자. 왜 5채가 생계형과 비생계형을 나누는 기준이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집을 많이 가졌으면 나쁜 사람이라는 이 정권 기조와 연관해 짐작해볼 뿐이다. 결국 ‘주먹구구식’으로 생계형 임대사업자 기준이 정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기준엔 여러 허점이 존재한다. 동일한 임대수익을 얻어도, 보유한 주택 수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게 대표적이다. 월 임대료가 60만원인 주택 3개를 보유한 사람은 생계형에 속하지만, 월 30만원인 주택 6개를 보유한 사람은 생계형이 아닌 식이다.

다세대·다가구 간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4채까지만 허용되는 다세대와 달리, 1채가 최대 19가구로 구성된 다가구의 경우 최대 76가구(4채)까지 생계형 임대사업자가 될 수 있다. 구분등기를 하지 않아 최대 19가구까지 1채로 구분돼서다. 둘의 임대 수익 차이는 최대 21배 이상 벌어지지만 오히려 더 많이 버는 임대사업자가 생계형으로 분리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만 60세 이상을 생계형으로 보겠다는 것도 문제다. 고령자가 은퇴 후 임대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평균 은퇴 시기인 만 60세가 생계형 기준이 된 것인데, 은퇴 시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40대에 은퇴 후 생계형 임대사업자가 될 수도 있다. 여당의 기준대로라면 근로소득이 일찍 없어진 40대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종부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렇게 부동산 정책의 기준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현재 9억원 이상인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격 상위 2% 이내로 바꾸는 방안이 그 예다. 여당에서 종부세 부과기준을 굳이 상위 2%로 정한 논리적인 근거는 물론 없다. 공시가격을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각 지방자치단체가 산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계선에 있는 사람 상당수는 동의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주먹구구식 부동산 정책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생계형이라는 용어가 나오자 임대사업자들 사이에서는 “누가 취미로 임대사업을 하겠느냐”는 한탄도 나온다. 정부 정책이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정책으로서 권위가 생길 것이다. 그러려면 늘 기준이 명확해야 하고 그 기준은 분명한 근거를 가졌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대충’ 갈라쳐서 정책을 하겠다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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