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휘어지는 빛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2021. 6. 1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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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처음 관측된 블랙홀의 모습. 공개된 이미지에서 아랫부분은 밝고 윗부분은 어두운데, 아랫부분이 관측자인 지구로 향하는 빛이고, 윗부분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빛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스가 회전한 탓에 도플러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EHT 제공

보통의 우리 머릿속에 있는 ‘새로운 과학이론’이라는 심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존의 과학 체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그러나 잘 알려진 미해결 문제를 새 과학이론이 멋지게 해결하는 것이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수성의 근일점 문제를 설명한 것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이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현상을 새 이론이 대담하게 예측하고 나아가 관측 또는 실험결과가 그 예측과 일치하는 사례이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가 태양에 의한 빛의 꺾임 현상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의 본질은 시공간의 곡률이다. 주변의 물체는 이렇게 휘어진 시공간의 최단경로, 즉 측지선을 따라 운동한다. 빛도 예외가 아니다. 태양처럼 무거운 천체가 있으면 그 주변의 시공간에 곡률이 생긴다. 태양 주변을 지나는 빛은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의 최단경로를 따라 진행한다. 시간이 휘어진다는 것은 시간 간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런 효과를 직접 관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주 멀리 있는 별에서 오는 빛이 태양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 지구에 도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태양 주변의 시공간은 태양의 엄청난 질량 때문에 약간의 곡률이 생긴다. 태양을 스치듯이 지나오는 빛은 이렇게 굽은 곡률을 따라 지구로 들어온다. 마치 야구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커브로 꺾여 들어오는 것과도 같다.

이 때문에 별은 원래 정확한 위치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은 별-태양-지구가 이 순서로 일렬로 정렬된 경우에 일어난다. 여기서 6개월 전이나 6개월 후에는 지구가 태양의 반대편에 위치하므로 별-지구-태양의 순서로 정렬하게 되어 별빛이 태양 근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지구로 들어온다. 따라서 이 경우에 별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아주 멀리 있는 별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관측해서 비교하면 태양 때문에 별빛이 얼마나 꺾이는지를 관측할 수 있다. 이처럼 중력의 본질을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은 태양을 이용해 그 효과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태양 때문에 별빛이 꺾이는 정도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해서 곧바로 계산할 수 있다. 물론 이 계산이 쉽지는 않아서 물리학과에서도 고급과정이나 대학원 정도에 들어가야 제대로 배운다. 그 결과는 1.75초 각도이다. 이 값은 태양의 질량에 비례하고 크기에 반비례한다. 지구에서 태양을 바라봤을 때 그 크기에 해당하는 각도, 즉 시지름은 약 0.5도이다. 1도 각도는 3600초이니까 태양의 시지름은 1800초이다. 따라서 태양 때문에 별빛이 꺾이는 정도는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 크기의 약 1천분의 1에 해당한다.

뉴턴역학의 체계 속에서도 태양 옆을 지나는 별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 정도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보다 정확하게 절반만큼 적다. 따라서 이 현상은 어느 중력이론이 맞는지 검증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른 중력의 작용. 태양이 시공간을 휘게 하고 지구가 결국 휘어진 시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태양의 주위를 돌게 된다. 과학동아DB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현상을 관측하려면 태양을 스치듯 지나오는 별빛을 관측해야 한다. 태양에서 멀찍이 떨어져 들어오는 빛은 그만큼 태양에 의한 효과가 작아진다. 문제는 태양이 너무 밝아서 태양에 근접해 지구로 들어오는 별빛을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태양처럼 빛을 내지 않는 천체 중에 무거운 천체, 예컨대 목성의 경우는 어떨까? 앞서 말했듯이 천체에 의해 빛이 꺾이는 정도는 그 천체의 질량에 비례하고 크기에 반비례한다. 목성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1천분의 1이고 반지름은 태양 반지름의 약 10분의 1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태양에 의해서 꺾이는 정도보다 약 백분의 1정도 (대략 0.02초) 밖에 안 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이 딜레마를 해결해 보라고 종종 질문을 던진다. 많은 학생들이 일단 일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 등 단어들이 주는 권위에 움츠러든다. 아인슈타인 정도 되는 사람이 그 어렵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하는 문제인데 그걸 나 같은 사람이 감히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사실 내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에는 적어도 절반 이상이 그 답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이다. 예컨대 사람 이름을 물었을 때는 그 답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 경우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인 엔리코 페르미만 하더라도 일반 학생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페르미를 묻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태양을 스쳐오는 별빛을 관측하기 위한 해결책은 바로 달에 있다. 우리에겐 달이 있다. 아주 우연히도 지구에서 바라보는 달의 시지름과 태양의 시지름이 똑같다! 달은 지구보다 4배 작고 태양은 지구보다 약 100배 크다. 한편 달과 지구의 거리는 달과 태양의 거리보다 약 400배 가깝다. 즉, 태양이 달보다 400배 정도 크지만 그만큼 더 멀리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봤을 때는 두 천체의 크기가 거의 같게 보인다. 달의 시지름도 0.5도이다. 이 때문에 지구에서는 달이 태양을 똑같은 크기로 가리는 우주쇼를 즐길 수 있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 즉 개기일식을 이용하면 밝은 태양빛이 가려지기 때문에 태양을 스치듯 지나오는 별빛을 관측할 수 있다.
 

달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개기일식 때 ‘코로나‘를 촬영한 모습. 사이언스 제공

일식을 한 번 본 사람은 평생 그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속설이 있다. 나는 지난 2017년 8월 미국 대륙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개기일식을 운 좋게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일행과 함께 오리건 주에서 일행들과 함께 일식을 볼 수 있었다. 개기일식은 약 1분30초 정도 진행됐었다. 속설과 마찬가지로 일식은 내 인생에서 정말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경험이었다. 달이 태양을 가리기 시작하면 정말 주위가 밤처럼 어두워지고 스산한 바람마저 불어든다. 

아인슈타인은 일식을 이용해 새로운 중력이론을 검증할 수 있음을 주변의 다른 천문학자들에게 알렸다. 놀랍게도 이런 논의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이 완성되기 전인 1912년부터 진행되었다. 이 무렵에는 에르빈 프로인틀리히라는 젊은 천문학자가 주인공이었다. 프로인틀리히는 1914년 크림반도에서 예정된 개기일식을 관측하러 나섰다. 과학의 역사도 인간의 역사의 일부분이라 당시의 거대한 시대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불행히도 프로인틀리히가 일식탐사에 나선지 약 열흘 뒤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프로인틀리히는 러시아에서 간첩으로 붙잡혔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울 에렌페스트, 빌럼 더시터르, 헨드릭 로런츠.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아인슈타인 아래에 위치해 있다. 동시대의 뛰어난 이론물리학자 또는 천문학자들이 1923년 9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학술모임에서 만나 찍은 기념사진. 위키피디아 제공

일식탐사에 성공한 사람은 그로부터 5년 뒤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었다. 에딩턴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로 손색이 없었다. 또한 상대성이론을 영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열렬히 옹호한 사람이기도 하다. 일화에 따르면 에딩턴은 스스로를 전 세계에서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단 두 명 중 한 명이라고 여기며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에딩턴의 영국과 아인슈타인의 독일은 세계대전까지 치른 적국 사이였다.

에딩턴 입장에서는 적국 과학자의 최신 이론을 열렬히 옹호해 자국에 소개한 셈이다. 영국과 독일을 한국과 일본으로 뒤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당시 현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에딩턴은 몸소 실천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에딩턴이 사해 동포주의자였다고 보기에는 좀 어려운 면도 있었다. 훗날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왔던 젊은 청년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의 중력붕괴에 관한 혁신적인 주장을 에딩턴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찬드라세카르를 외면했다. 찬드라세카르에 따르면 별의 질량이 어떤 한계(찬드라세카르 한계) 이상일 때는 흰난쟁이별(백색왜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훨씬 더 밀도가 높은 별로 진화하게 된다. 
 
전쟁의 참화는 과학의 역사를 기묘하게 바꾸기도 한다. 에딩턴의 경우가 그랬다.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만 해도 영국에서는 징집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전쟁이 한창인 1916년에서야 새로운 병역법이 통과돼 징집제가 시행되었다. 1913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있던 에딩턴도 징집 대상자였다. 다행히 대학 당국의 도움으로 에딩턴은 병역 면제대상이 되었으나 병무청이 이에 불복하자 에딩턴은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신청했다. 에딩턴은 퀘이커교도여서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 놀랍게도 영국에서는 새 병역법을 만들면서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인정했고 대체 복무나 비전투병 복무 같은 대안도 마련해 두었다. 
 
최종적인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에딩턴은 당시 왕실 천문학자였던 프랭크 다이슨과 함께 1919년 5월29일로 예정된 일식을 탐사할 계획이었다. 군 당국은 이 일식탐사를 조건으로 에딩턴의 병역을 1년 면제해 주었다. 1차 대전은 1918년 11월에 끝났다. 만약 에딩턴의 양심적 병역거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다른 형태의 대체복무를 하게 되었다면 에딩턴은 1919년의 일식을 탐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에딩턴의 시도도 프로인틀리히의 에피소드처럼 전쟁이 어떻게 과학연구를 가로막았는지 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을지도 모른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면 만약 1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프로인틀리히가 1914년 일식탐사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물론 과학계 전체로 보자면 에딩턴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훗날 누군가는 다른 일식에서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결국에는 검증했을 것이다. 실제 1919년 이후에도 일식을 이용한 검증 사례는 많았다. 다만 누가 언제 일식탐사에 성공했느냐, 그래서 어떻게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했느냐 하는 역사의 기록은 달라졌을 것이고 그 영광을 누릴 구체적인 사람과 국가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1919년은 우리에게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수립으로 기억되는 해이다. 세계대전을 치르면서도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인정했던, 또는 과학자의 연구를 위해 병역을 면제했던 나라가 있었던 반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던 나라도 있었다. 현대과학의 태동기에 우리가 비극적인 역사를 관통했었다는 사실은 20세기 내내 우리에게 그 후과를 남겼다. 반면 그런 전후사정에도 100년 뒤에는 G7에 이를 정도의 나라가 되었으니 이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에딩턴이 1919년 일식을 탐사하기 위해 찾은 곳은 서아프리카 연안의 프린시페 섬이었다. 

1919년 영국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촬영한 태양 개기일식 사진이다. 에딩턴은 일식 순간 주변에서 촬영할 수 있던 별들의 위치를 평소와 비교해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간 휘어짐과 빛의 진행방향 변경 현상을 확인했다. 위키미디어 제공

※관련기사

데니스 오버바이, 《젊은 아인슈타인의 초상》(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아서 밀러, 《블랙홀 이야기》(안인희 옮김), 푸른숲.
A.V. Douglas, 《The Life of Arthur Eddington》, Thomas Nelson and Sons.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 jongphil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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