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간은 신의 복제물 아니던가

한겨레 2021. 6. 1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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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영국 작가로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은 <남아 있는 나날> (1989)이지만 <나를 보내지 마> (2005) 역시 또다른 대표작으로 평판을 얻은 작품이다.

복제인간은 장기기증을 위한 의학재료로서 운명이 정해져 있지만, 희망에 따라서는 장기기증자가 되기 이전에 그들을 돌보는 간병사로 얼마간 일할 수 있다.

<나를 보내지 마> 에서는 캐시와 그의 친구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독자가 자연스레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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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책&생각]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민음사(2021)

일본계 영국 작가로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은 <남아 있는 나날>(1989)이지만 <나를 보내지 마>(2005) 역시 또다른 대표작으로 평판을 얻은 작품이다. 장기 기증용 복제인간(클론)들의 이야기로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장르소설의 외피는 이 작품에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아닌 1990년대를 시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장기이식 과정이나 복제인간의 생산과 관리 문제를 개략적으로 언급할 뿐 따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과 함께 기술적으로는 가능해진 복제인간의 문제를 통해서 뭔가 다른 주제를 다루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의 화자는 캐시다. 복제인간으로 헤일셤이라는 특별한 기숙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이후에는 10여년간 간병사로 일하고 있다. 복제인간은 장기기증을 위한 의학재료로서 운명이 정해져 있지만, 희망에 따라서는 장기기증자가 되기 이전에 그들을 돌보는 간병사로 얼마간 일할 수 있다. 캐시는 헤일셤 학교의 친구들인 루스와 토미의 간병일도 맡았고 그들을 먼저 떠나보낸 시점에서 이제 그녀 자신이 장기기증 차례를 앞두고 있다. 독자는 캐시의 회상을 통해서 그들이 함께 보낸 학창시절과 그 이후에 겪은 일, 헤일셤 학교의 비밀 등을 알아가게 된다.

보통의 소설에서라면 독자는 주인공의 시점에 동화되어 그와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시구로는 매번 의도적으로 주인공과 독자를 분리시키는 전략을 쓴다. 가령 <남아 있는 나날>에서 독자는 영국식 저택의 충직한 집사로서 한평생을 살아온 스티븐스 시점의 서술을 따라가다가 그의 편견과 제한된 식견을 깨닫고 그와 분리되게 된다. 더불어 ‘위대한 집사’와 ‘품위’에 대한 그의 생각이 착오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캐시와 그의 친구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독자가 자연스레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작품 속 복제인간들의 학교생활 경험과 감정이 독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헤일셤은 복제인간을 위한 실험적 학교로 다른 사육장과는 다르게 그들에게 인간과 동등한 교육과정을 제공했다. 따라서 그들의 학창시절 경험은 독자에게도 동일시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간병사로 일하면서 캐시는 자신의 경험과 추억이 복제인간으로서는 얼마나 예외적이면서 특별한 것이었던가를 깨닫는다.그러나 캐시 역시 장기기증자의 운명에서 벗어나진 못한다. 어차피 의학재료에 불과하다면 캐시의 지식과 감정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질문들과 함께 소설은 독자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복제인간과 달리 근원자(원본)라고 자임하겠지만 독자 역시도 유한한 존재라는 점에서는 복제인간과 다르지 않다. 미래에 죽음까지 극복한 트랜스휴먼이 등장한다면 현재의 인간 역시 열등한 존재로 격하될 수 있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신(원본)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한 피조물(복제물)이 아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면 <나를 보내지 마>는 유한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성찰하게끔 하는 우화적인 소설이다. 불멸적 존재와 다르게 인간은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희미한 기억으로만 되찾을 수 있을 뿐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캐시가 보여주는 태도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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