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찬성했던 골목사장님 "부담 나누는 정책 있어야.."

신다은 2021. 6. 1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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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상생의 길' 찾자
(하) 자영업자·영세기업 충격 줄이려면
폐업하고 임대 광고가 붙어 있는 서울의 한 상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42살 이성진(가명)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긍정적이었다. 그는 프랜차이즈 본부에서 월 정산금을 1100만원 정도 받는데, 코로나19 이전엔 월세 200만원에 인건비 600만원을 쓰고 세금 등을 내면 300만원 정도 벌이가 됐다. 그는 항상 ‘사장과 직원이 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른 뒤 이를 보완해야 할 정책들이 함께 따라오지 않으면서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했다. 몇년 새 배달 플랫폼이 활성화하면서 시장을 자꾸 빼앗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과자와 음료수, 문구류와 화장품까지 죄다 배달하니까 올라간 노동자들의 임금이 골목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게 됐어요. 그나마 지난해 재난지원금을 골목에서 소비하게끔 한 지역화폐 정책이 도움이 됐는데 앞으로 그런 정책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경기도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45살 이동훈(가명)은 코로나19로 번화가 상권이 무너지면서 타격을 입었다. 24시간 매장을 운영하면 한달 매출이 1천만원 정도 나왔는데, 코로나19로 야간시간 영업이 제한되자 손님이 줄어 매출이 600만원대로 급감했다. 고정 인건비에 각종 공과금을 내면 임대료 150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동훈은 지난해 12월까지 버티다가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재료 회전이 안 되니까 사흘 만에 소진해야 할 식재료를 일주일 만에 소진하게 되면서 맛이 변했어요. 게다가 해장국은 24시간 끓여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니까 예전 맛이 더 안 나고요.”배달을 해서 매출을 보전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배달 전문 음식점과 경쟁해야 했고 배달비와 광고비, 용기 구매 비용 등을 들여도 배달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는 고금리 대출을 끌어다 쓰며 버텼지만 영업제한이 계속 연장되자 나중엔 신용등급이 하락해 대출조차 나오지 않았다. “영업제한이 있었던 시기 손실보상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신용등급을 보지 않는 소상공인 대출 상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은 결국 매장이 돈을 벌어야 해결되는 문제라, 지금처럼 돈을 못 벌 땐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방식이 현실적이겠죠.”

올해 8월 결정되는 최저임금을 두고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동결이나 인하를 주장하는 경영계의 다툼을 보는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주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규모 실직과 지난 2년간 1.5∼2.5%의 낮은 임금 인상률로 인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현실을 보면, 자영업자들도 같은 ‘을’의 처지에서 마냥 경영계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매출 부진이 워낙 컸던데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으로 이어져 자영업 경기도 수혜를 받게 할 보완장치도 마땅치 않았다. 이에 <한겨레>가 만난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부가 최저임금을 상당폭 인상할 때 시장의 충격을 줄일 만한 ‘패키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플랫폼과 공존할 방안 등 나와야”

지난해 통계청 기준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37만명이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도 인건비 부담 수준에 따라 직원을 쓸지, 건당 수수료 배달 등에 의존할지 등 최저임금에 폭넓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매출 감소와 그에 따른 임대료 압박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별도의 정책 지원이 없다면, 이들은 인건비 상승으로 직결될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성진이 운영하는 편의점은 그나마 주택가에 있어 매출이 코로나19 이전보다 10% 정도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유흥가나 학교 주변에 있는 편의점은 유동 인구가 줄면서 매출 감소폭이 워낙 컸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이 확 커지면서 자영업자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느끼고 있다. “3년 전에는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만큼 골목상권으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소비자들이 다 대형 쇼핑몰과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니까요.” 이성진의 말이다.

이에 코로나19 영향과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아래서 자영업이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여력을 가지도록 플랫폼의 시장 독식을 규율할 방안이나 골목상권에 돈이 돌도록 할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황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런저런 논란에도 의무휴업 규제가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에 적용된 이유는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효과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 단위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면서 과거 마련된 규제가 예전만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플랫폼의 시장 독식 현상을 어떻게 규율할지, 자영업자와 어떻게 공존하도록 할지 지금부터라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정부는 지금껏 일자리안정자금 등 자영업자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의 부담을 덜어줬는데, 앞으로는 경기 회복 흐름에 맞춰 이들의 매출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소멸성 지역화폐나 신용카드 충전 방식을 통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돈이 흐르도록 강제하면, 매출이 늘고 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지키려다 입은 피해, 공동체가 져야”

충남 천안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장 방기홍은 손실보상을 이야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체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한 건데, 감염병의 원인을 자영업자들이 제공하진 않았잖아요. 공동체의 생명을 지키려다가 우리가 입은 피해는 공동체가 져야 하는 게 맞는 거죠.”

서울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김호균(가명)도 “가장 시급한 건 손실보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영업제한 등으로 매출이 줄었는데, 이를 보상해주지 않으면 비용을 줄일 데는 인건비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가 운영하는 코인노래방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하루 매출이 3분의 2 이하로 줄었다. “하루 7시간 아르바이트를 평균 세명 정도 썼는데, 지금은 아르바이트도 한명을 4시간만 씁니다. 청소 아르바이트도 뺐죠. 집합금지를 5개월이나 당했는데, 손실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이건 국가의 의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경남 김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3살 이혜진도 코로나19 이후 월 매출이 500만~700만원대에서 200만원대로 확 줄었다. 월 100만원의 임대료도 수개월째 밀리면서 대출을 받는 형편이 됐다. 결국 일하던 직원들을 내보내고, 지금은 평일 4시간짜리 아르바이트 한명만 남긴 상태다. “코로나19 이후 생긴 빚만 7천만~8천만원 정도 됩니다. 신용도도 2등급에서 8등급까지 내려갔다고 해요. 자괴감뿐입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손실보상의 핵심은 고정비 중 가장 비중이 큰 임대료”라고 짚었다. 그는 “원칙적으로는 소급 적용을 해야 하며, 올해 남은 6개월간이라도 정부가 임대료와 같은 고정비용을 반영해서 충분한 보상이 되게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까진 돈을 줘야 할 주체를 가릴 시간이 없었으니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맞았지만, 올해는 공연·예술인, 헬스장 사장 등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이들의 여력 일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설득하는 게 맞다”며 “수출 회복으로 큰 이익을 낸 삼성그룹이나 현대그룹에 정부가 ‘뉴딜’이란 이름으로 지원하지 말고, 그 돈을 풀어서 (자영업자 등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공정 거래 개선 없이는 임금 인상도 어려워”

최저임금의 영향은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영세기업 노동자들에게도 미친다. 영세기업주는 납품 기업에 거래대금 인상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을’의 처지를 호소한다. 5인 미만 회사 사업주는 3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 기업의 납품 환경이 개선돼야 최저임금 지급 여력도 함께 늘어난다.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업체를 운영하면서 사내 하청 갑질 피해를 호소했던 현대중공업피해대책위원장 한익길은 “우리가 요구해왔던 건 두가지”라고 말했다. 하나는 원청이 가격을 제시할 때 명확한 가격과 그 근거 자료를 계약서에 표시하게 해달라는 것, 다른 하나는 선작업·후계약을 없애달라는 것이었다. “전자는 하도급법에 넣어달라고 했는데 안 됐고, 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선작업·후계약을 불법으로 판단하니 현실에선 서류만 조작해 선후를 바꿉니다.”

한익길도 최저임금은 올라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노동자 처지에선 올라야 하는 거죠. 그런데 최저임금이 오르면 하청 업체 사장이 거래대금도 올려 받아야 하는데 원청에 그러자고 요구하기가 어려워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말할 때 원청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대금 계약을 하도록 지침이 함께 따라와야 해요.”

지금도 인건비나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하청업체가 이를 납품 단가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가 있다. 하지만 원청의 보복을 우려하다 보니 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같은 업종으로 묶인 협동조합이 단체로 원청 대기업 쪽과 대금 협상을 하는 틀이 마련돼야 하는 까닭이다. 조선소 하도급 갑질 피해 사건을 대리한 김남주 참여연대 실행위원(변호사)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납품 단가 인상에 연동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게 잘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이 오르니 중소기업이 그 인상분을 다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현행법 안에선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의 활용도를 높일 방안을 정부가 고민해야 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회가 단체협상의 실질적 권한을 확대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등을 처리해야 한다”고 짚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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