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물가·분배율로 '인상률 공식' 만들어 갈등 고리 끊자"

박준용 2021. 6. 11.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제도 개선' 전문가 제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4월20일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노동자들이 받는 실질 최저임금이 감소하는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공동취재사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올해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93만~408만명, 영향률은 5.7~19.8% 정도라고 추정했다. 영향률은 최저임금 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는 노동자 비율을 이른다. 이 비율이 최대 19.8%라는 건 임금 노동자 5명 가운데 1명의 지난해 임금이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8720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들이 인상 효과를 가장 밀접하게 체감하게 된다.

이렇게 저임금 노동자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큰 최저임금은 해마다 4~7월 사이에 노동계와 경영계가 서너달 ‘밀당’을 한 뒤 8월5일까지 결정하는 ‘쳇바퀴식 논의’를 반복해왔다. 논의도 시간당 얼마냐라는 숫자를 둘러싼 노사 간 다툼에만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얼마냐도 중요하지만,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 맞게 지표를 바탕으로 인상률을 결정해 사회적 신뢰를 강화하고 최임위가 1년 내내 상시적 논의를 할 만한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한다.

경제성장률·실질생계비 등 지표 만들어야

현행 최저임금법 4조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정하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기준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한겨레>가 최저임금 관련 전문가 10명에게 문의한 결과, 5명이 구체적인 지표를 통한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현재 여러 지표가 참고는 되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표에 근거하지 않고) 현재와 같이 교섭의 자유도를 허용하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며 “노사가 합의한 여러 지표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게 낫다”고 짚었다.

앞서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달 24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주최한 공개 토론회에서 정부가 지난달 초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4%와 소비자물가상승률 2.3%(4월 기준)를 더한 값인 6.3% 이상을 2022년도 최저임금 적정 인상률로 제시했다. 이정아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이를 인용하며 “경제성장률과 물가, 5년 정도의 분배 개선치 등의 지표를 상정해두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산출하는 공식을 만들어서 규칙성을 부여해야 한다”며 “올해 성장률과 소득분배 등을 보고 최저임금 인상 폭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도 “세력 싸움이 아니라 소비자물가지수, 경제성장률, 소득분배율 등을 바탕으로 한 산식을 기본으로 두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살필 만한 지표도 산정 기준에 넣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 최임위원인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실질생계비로 살아야 하는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의 현실도 들여다보면서 합리적인 수준의 인상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임위, 독립·전문 기구로 역할 강화해야

상설위원회임에도 1년에 서너달 정도 집중 활동하고 마는 최임위의 역할을 확대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호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가 임금 격차인데, 이런 논의까지 이어가는 최임위가 되어야 한다”며 “최임위는 상설 조직답게 독립적이고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기구로 강화돼야 하며, 국가임금위원회를 만들어서 분과를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 최임위원인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도 “최임위는 1년 내내 충실하게 논의를 하면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 주휴수당 문제에 대한 정보를 생산하는 등의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추진했던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방안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현재 최임위는 공익위원과 노동자 추천 위원, 경영계 추천 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다. 정부는 이를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먼저 정하면, 노사 양쪽과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가 해당 범위 안에서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담은 개편안을 2019년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오상봉 본부장은 “구간설정위원회가 범위를 넓게 설정하면 (구간설정위원회가) 필요 없다고 할 거고, 좁게 설정하면 현재 교섭 구조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올 것”이라며 “현재 방식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구조도 바꿔야

저임금 노동자의 빈곤 해소라는 최저임금 설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넘어선 구조적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남신 소장은 “최저임금 논쟁이 소상공인·자영업자와 노동자 간 ‘을들의 대립’으로 귀착된 데 대한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며 “재벌과 부동산 중심의 한국 사회에선 원·하청 문제와 골목상권 침탈 등 구조적 요인에 같이 주목하면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아 부연구위원도 “현재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집중도가 높은 이유는 임금 개선 방안이 ‘이것밖에 없어서’다. 최저임금에 고유의 역할이 있지만, 모든 걸 다 하는 건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대기업과 공공기관 임원 등의 임금을 최저임금과 연계해 제한하는 임금상한제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공백을 메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별 노사교섭을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체계를 개선하는 시도도 병행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성희 교수는 “최저임금에 집중하는 국가는 노사교섭으로 보편적 임금 인상이 안 되는 나라”라며 “프랑스가 노조 조직률은 10%대이지만 전체를 위해 임금교섭을 하고 영향력도 큰데,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면 최저임금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상호 교수도 “산별협약에 대한 심의위원회를 최임위에 두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사각지대도 살펴야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초단시간 노동’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지난해 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낸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불평등 축소에 미친 영향 보고서’(김유선)를 보면, 임금 하위 10% 노동자들 가운데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가 2017년 31.4%에서 2018년 33.7%, 2019년 41.9%로 늘었다. 2018년(16.4%)과 2019년(10.9%)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사업주들이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에게는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악용해 ‘노동시간 쪼개기’로 대응한 영향이다. 전 최임위원인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15시간 미만을 근무해도 주휴수당을 시간에 비례해 전면 적용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주휴수당을 기본급에 반영하고, 그만큼 최저임금을 올리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희 교수도 “최저임금 논의는 초단시간 노동에 대한 제한 강화와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문제”라고 짚었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 ‘근로계약’이 전제된 최저임금 제도 밖에 있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등을 포괄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민 사무처장은 “플랫폼 노동의 등장으로 고용의 의미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이런 변화 양상을 최저임금 논의가 못 따라가는 면이 있다. ‘노동 밖의 노동’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지 규정해야 최저임금 논의도 힘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신다은 기자 juneyo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