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이게 다 산에서 나온 쓰레기랍니다

한겨레 2021. 6. 11.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마 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러나 전국의 산에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 많고 우리들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산에 이렇게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쓰레기로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등산하며 주운 쓰레기를 정상이나 넓은 공터에 펼쳤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C : 김강은의 산 네게 반했어]

산의 쓰레기로 만든 정크 아트. 사진 김강은 제공

얼마 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관악산을 등산할 때였다. 산을 오르는데 건너편에서 걸어오던 한 어르신이 쓰고 있는 마스크를 나뭇가지에 고이 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새 마스크를 꺼내 쓰고 유유히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두 눈을 의심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가 새로운 쓰레기로 등장한 것도 안타깝지만 환경적 이슈가 대두함에도 개의치 않고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너무 다양해서 매번 놀랄 정도다. 물휴지나 담배꽁초는 기본. 나무젓가락과 과일 껍질, 건강즙, 치실, 구두, 우산, 오래된 장기판과 벽시계, 양말과 바지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쓰레기가 산에도 버려져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때로는 유물을 발굴하듯 30년도 더 된 쓰레기를 캐내기도 한다. 최근 경기 남양주시와 서울 노원구에 걸쳐있는 불암산에서 산 중턱에 버려진 무수한 조개껍데기 더미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발견했다. 코너 이름을 ‘산, 네게 반했어!’가 아니라 ‘산, 네게 미안해!’라고 바꿔야 할 지경이었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클린하이킹 활동을 시작한 지 4년차, 칭찬을 듣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많은 분의 덕담을 받기도 한다. ‘좋은 일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등등. 그러나 처음에 많은 사람이 보였던 뜨거운 관심도 어느새 뜨뜻미지근 해졌다. 쓰레기 줍는 모습이 처음엔 신선해 보여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흔한 봉사활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쓰레기가 가득한 모습은 매일 보고 싶은 유쾌한 장면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산에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 많고 우리들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정크 아트. 사진 김강은 제공

어떻게 하면 산에 이렇게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쓰레기로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등산하며 주운 쓰레기를 정상이나 넓은 공터에 펼쳤다. 그리고 쓰레기들을 색깔, 종류별로 조합하여 커다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인간의 흔적으로 울고 있는 야생동물들 혹은 자신이 버린 쓰레기로 결국 스스로 고통받는 인간의 자화상과 같은 모습들이다. 예술에는 일상생활에서 버려지는 폐품이나 쓰레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정크 아트(junk art)’라는 장르가 있다. 산 쓰레기도 새로운 정크 아트 작품으로 탄생했다. 사진 찍고 제목까지 붙이면 작품이 완성된다. 많은 사람이 형상화된 커다란 이미지를 보고 놀라고,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이게 모두 산에서 나온 쓰레기라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쓰레기의 재탄생이자 ‘쓰레기 버리지 맙시다’라는 메시지의 새로운 변신이다. 보는 사람들도 재미있겠지만, 만드는 사람도 이번에는 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서 보여줄까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코로나로 우리의 일상과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연을 찾아 숨통을 트고 기쁨을 누리고 있다. 산을 통해 활력을 채우고 삶을 변화시킨 내게는 자연이 더 고맙고 소중한 존재다. 그런 자연이 쓰레기로 가득하거나 파괴된다면, 더 이상 우리의 안식처가 아닐 것이다. 코로나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로 느껴지는 요즘, 자연을 찾았을 때 내 흔적 남기지 않기, 내가 버리지 않은 쓰레기더라도 가져오는 것이 올바르고 당연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강은(벽화가·하이킹 아티스트)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