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인류사회는 사물에 가치 부여하는 일에 익숙"
사람들 대체불가능한 자산에 열광
존재하지도 않는 조각상에 거액 투자
1950년대 뉴욕서 큰 돈 번 신흥부자들
자신들만의 새로운 지위상징 필요로
팝아트작품 대거 사들이며 가치 높여
작품의 금전적 가치, 결국 사람이 결정
지난주에 이탈리아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살바토레 가라우라는 60대의 아티스트가 ‘로 소노(Lo Sono)’라는 조각상을 경매를 통해 우리 돈으로 약 2000만원에 팔았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는 일인데 화제가 된 것은 이 작품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이 작품은 “공기와 정신(spirit)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면서 “이 작품은 당신이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뭘 산 것일까. 엄밀하게 말하면 아티스트가 서명한 진품 증명서를 산 셈이다. 증명서를 위조할 수는 있지만 경매장에 판매 기록이 남아있고, 이 사실이 큰 뉴스가 되어 세계에 퍼졌으니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이 작품이 그 사람의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안전한 소유권도 없다. 실체가 있는 작품이라면 손상과 도난을 우려해 많은 안전장치를 유지해야 하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작품이니 훔쳐갈 수도 없다. 만약 진품 증명서를 훔치거나 위조한다고 해도 경매장에 남아있는 기록과 전 세계에 퍼진 판매 뉴스가 남아있으니 “내가 로 소노의 소유자”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살바토레 가라우는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소유권의 작동방식은 다르지 않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소유권을 바꾸는 것은 세상에 퍼진 모든 뉴스 기사를 전부 바꾸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볼 수도 없는 그 예술작품은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로 소노는 2000만원이었지만 사람들은 NFT를 통해 디지털 작품에 수십억 원의 돈도 마다치 않고 지불하는데, 그런 작품들이 정말 비슷한 가격의 유명 미술관에 걸린 고전 명화들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작품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예술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답하기 힘들지만, ‘금전적’ 가치를 이야기한다면 쉽게 답할 수 있다. 예술작품의 금전적 가치는 사는 사람이 결정한다. 많은 예술작품이 경매를 통해 팔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론 화랑에 가면 작가가 요구하는 가격이 붙어있지만 그건 그 작가가 원하는 가격일 뿐이다. 아무도 사지 않으면 그 작품은 아무런 금전적 가치가 없다.
여기에서 비플(Beeple)을 비롯해 NFT로 큰 부자가 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누가 구매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도대체 수십 수백억 원의 돈을 실제 작품이 아닌 소유 증명에 불과한 NFT를 구매하는 데 썼을까. 구매자들은 전통적인 미술 애호가, 수집가들이 아니라 비트코인 등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뒤늦게 암호화폐에 투자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비트코인 갑부들은 대개 암호화폐의 가치가 아주 낮았던 시절에 사서 가지고 있다가 느닷없이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NFT처럼 위험한 투자에 돈을 쉽게, 함부로 쓸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라고 불리는 이들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강한 확신을 그 누구보다도 일찍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갑부가 된 것은 그러한 믿음이 증명된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증명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NFT가 붙은 디지털 예술작품을 구매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와 가능성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홍보일 뿐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미래가 밝다면 제일 먼저 그 시장에 들어가서 선점을 하는 게 당연한 투자행위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좋아하는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과 마찬가지로 팝아트 역시 쉽고 이해하기 좋다고 해서 금전적인 가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작품들을 큰돈을 주고 사는 수집가가 있어야 한다. 추상표현주의를 비롯해 미국 미술을 흥행시킨 전설적인 화상(?商) 레오 카스텔리는 팝아티스트들의 가능성을 보고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무엇보다 1950년대 뉴욕에서 택시사업으로 큰돈을 번 로버트와 에셀 스컬 부부 같은 신흥부자들이 이들의 작품을 대거 사들이면서 팝아트의 금전적 가치를 올려놓았다.
당시 신흥부자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지위상징이 필요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문화로 차별화를 해야 한다. 20세기 초에 돈을 번 전통적인 갑부들(old money)이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그들을 따라 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갑부들이 간과하는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찾으려 했고, 카스텔리 같은 갤러리들이 그들에게 딱 맞는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팝아트는 대중적 인기와 금전적 가치를 단번에 획득할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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