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해체계획서 있으나 마나.. 광주 참사는 '민관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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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人災).'
지난해 5월 시행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건축물 철거 때 관리자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작성과 주무 감독청의 감리자 지정이 의무화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붕괴 건물에 대한 해체 작업 순서와 해체 공법, 구조안전계획 등이 담긴 해체계획서를 통해 건축물관리법의 맹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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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자 없이 공사.. 공법까지 바꿨을 가능성
경찰, 철거업체·건축사사무소 등 압수수색
'인재(人災).'
이번에도 그 지독한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지상 5층 지하 1층) 붕괴 사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5월 시행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건축물 철거 때 관리자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작성과 주무 감독청의 감리자 지정이 의무화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철거업체는 해체감리자도 없는 상태에서 위험천만한 공사를 진행했고, 감독청은 국토교통부 기준과 다른 해체계획서가 제출됐는데도 철거 허가를 내줬다. 이번 참사가 '민관 합작품'이란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번 사고는 붕괴 건물에 대한 해체 작업 순서와 해체 공법, 구조안전계획 등이 담긴 해체계획서를 통해 건축물관리법의 맹점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구조안전계획엔 건물에 작용하는 하중 등이 포함된 구조안전성 검토보고서를 첨부하도록 돼 있다. 이는 건축 구조에 전문 지식을 갖춘 구조기술사가 작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건축물관리법은 전문가에게 계획서 검토를 받도록 하면서, 그 범위를 건축사와 기술사, 안전진단 전문기관으로 넓혀 놓았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가 발생한 재개발구역의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조합)이 허가권자인 광주 동구청에 제출한 구조안전성 검토보고서를 구조기술사가 아닌 A건축사가 검토했다. 동구청도 해체계획서를 확인·검토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이 계획서의 형식적인 요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형식적인 해체계획서가 제출되고 허가권자도 별다른 기술적 보완 없이 검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해체계획서의 작성 및 감리업무 등에 관한 기준에 따르면, 구조안전계획엔 건물 붕괴 대책도 세우도록 돼 있지만, 동구청은 붕괴 대책이 포함돼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동구청은 해체계획서에 담긴 해체 작업 순서가 국토부 기준과 다른데도 허가했다. 실제 이 조합의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건축물 구조 안전 위험성이 높은 측벽에서부터 철거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따라 철거업체인 H사도 건물 뒤쪽에 3층 높이로 성토체(盛土體)를 조성한 뒤 굴삭기를 동원해 건물 측면부터 까나가기(해체)를 했다. 마감재, 지내력 벽체, 슬래브, 작은 보, 큰 보, 기둥의 순으로 해체하라는 국토부 기준을 어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구청이 지정한 해체감리자 B건축사는 현장에 상주하면서 해체계획서대로 적합하게 시공하는지 검토하고 확인해야 했지만 나 몰라라 했다. 조성구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사고 4시간 전 공사 현장 사진을 보면 건물 안쪽에서 수직으로 절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건축물 구조적으로 안 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실제 해체계획서엔 성토체 위에서 굴삭기가 건물을 압쇄하는 방식을 채택, 최상층부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1, 2개 층씩 철거하는 것으로 돼 있다. 철거업체가 멋대로 해체 공법을 변경했거나, 해체계획서에 따른 철거 순서를 지키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10일 H사와 B건축사사무소 등 4곳을 압수수색하고 굴삭기 기사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은 조합 측이 제출한 구조안전성 검토보고서나 해체계획서가 조작됐거나 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봐주기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동구청은 시행 1년 된 관계 법령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뒤늦게 법령 및 제도 정비를 관계 부처에 건의하겠다고 했다. 동구 관계자는 "최근 많은 건물들이 재건축 및 재개발로 인해 해체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해체 과정에서 사전 조치 사항이나 허가 검토 사항 등 사고 방지를 위한 세부적인 기준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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