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다운 방식 철거원칙’ 안지켰다… 건물옆 土山도 붕괴압력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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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9명을 포함,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광역시 동구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는 건물 해체(철거) 계획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무리한 공사가 주요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10일 광주 동구청 등에 따르면, 학동 4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지 철거 업체가 구청에 제출한 해체 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계획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규정 무시한 날림 철거
당초 철거 업체 측은 사고 당일인 지난 9일 철거 공사를 시작했고, 5층을 철거 중이었다고 밝혔다. 구청에 신청해 허가받은 계획서에도 5층 건물 옆에 폐자재와 토사 등으로 성토체(盛土體)를 쌓은 뒤 굴착기가 그 위에 올라가 5층부터 외부 벽과 방벽, 슬래브 순으로 3층까지 해체하고, 지상으로 장비를 이동해 1~2층을 철거하겠다고 돼 있다. 하지만 붕괴 사고 전에 촬영된 영상과 사진 등을 살펴보면 이 건물은 지난 1일부터 4~5층 외부 벽체를 그대로 둔 채 굴착기가 3층 이하의 저층 구조물 일부를 철거하고 있었다.
사고 몇 시간 전에 찍은 사진에는 3~4층 높이 성토체 위에 올라가 작업하는 굴착기 모습이 보인다. 건물 각 층의 한쪽 면은 거의 뜯겨 나간 상태였다. 5층부터 아래쪽으로 차례로 철거해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층을 동시에 해체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건물은 도로 쪽에서는 5층 전체가 제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껍데기만 위태롭게 서 있는 상태였다. 해체 작업 중 건물 붕괴를 막아줄 버팀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한 철거 업체 관계자는 “건물 한쪽 면을 제거한 탓에 옥상 등 상층부 슬래브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위에서 아래로 차근차근 내려오는 ‘톱 다운(top down)’ 방식만 잘 지켰으면 일어날 수 없는 사고”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건물 옆에 성토체를 쌓은 뒤 철거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송창영 광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형 굴착기에 눌린 토사 더미가 가뜩이나 위태로운 철거 건축물 구조에 압력을 가했고, 이를 이기지 못해 반대쪽 도로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철거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산 먼지를 제거하려 지속적으로 뿌린 물 때문에 성토체 지반이 약해졌고, 이것이 건물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 상당한 압력을 가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구청에 제출한 해체 계획서가 적법하게 작성됐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조창근 조선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3층 이상 건물을 철거할 경우 철거 계획서에 건물의 용도와 특성, 하중, 설계 도면 등에 따라 투입 장비와 해체 공법 등 구조 안전 계획을 첨부하도록 의무화됐다”며 “철거 계획서에 이 안전 사항들이 면밀히 검토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철거 업체의 무리한 공사와 허술한 안전 관리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2~3단계 하청과 재하청이 이뤄지는 공사 현장의 납품 구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는 “한솔기업과의 계약 외에는 재하도급을 준 적이 없다”며 “이번 사고 현장의 경우 재재하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② 안전원칙 안지켰다… 차량통제 않고 정류장도 안옮겨
車道와는 불과 3~4m 거리인데 건물무게 지탱할 철골 기둥 없어
안전시설은 발판 비계·가림막뿐
붕괴 사고가 발생한 건물 철거 현장은 인도와 붙어 있고, 차도와 거리도 3~4m에 불과했다. 공사장 주변에는 왕복 7차로 도로와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현장에 있는 안전시설은 낙하물을 방지하는 발판 비계와 가림막뿐이었다. 건축물 무게를 조금이라도 지탱해 줄 수 있는 철골 기둥이나 인도를 보호할 철제 터널 등은 설치되지 않았다.
시공사와 철거 업체 측도 특별한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을 철거 기간만이라도 임시로 옮기거나, 건물 앞 차로 일부를 통제했다면 이 같은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 업체 관계자는 “공사를 시작하면 도로나 인도에 안전 장치를 설치하고, 정류장을 옮겨 달라고 시에 건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시공사가 공사 현장의 안전 조치를 요구하게 돼 있지만, 그런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버스 정류장을 일시적으로 옮기거나 폐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으나, 시공사는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 구청장은 “철거 업체 측은 안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저희가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재해 예방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라며 “만에 하나 건물이 넘어질 경우를 대비해 정류장 이동과 도로 통제 등 만반의 대비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초 철거 업체 관계자는 사고 직전 건물에서 ‘뚝, 뚝’ 하는 소리가 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 작업자들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물 주변 인도를 오가는 보행자만 통제했을 뿐 차도의 차량 통제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이상 징후가 사고 직전 나타나 인도에서 보행자를 통제하던 신호수들이 급히 몸을 피한 것”이라며 “사고 시점에 차량 통제를 할 여유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③ 관리원칙도 안지켰다… 철거현장에 ‘감리자’도 없어
경찰, 5곳 압수수색 14명 소환… 조사구청 “철거 시공사 등 당국에 고발”
이번 사고가 발생한 재개발 구역 사업의 시공사는 국내 대표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이지만, 철거는 하청 업체가 맡았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은 건물을 철거할 때 이를 감독할 감리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이와 관련,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는 이날 광주광역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고 당시 현장에 감리자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비상주 감리' 계약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광주 동구는 재개발 조합 측이 철거 공사 과정에서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는 ‘비상주 감리’ 계약을 맺은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지만, 국토부 매뉴얼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비상주 감리가 가능하다고 해도 감리자가 위험한 공정으로 보이는 철거 공사 당시 현장에 없었던 점 등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경찰 수사로 규명되어야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철거 계획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번 주 중 철거 시공사와 감리자를 각각 건설산업기본법, 건축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사법 당국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이날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시공사와 공사 관계자와 목격자, 공무원 등 13명을 불러 조사했으며, 이 가운데 1명을 입건했다. 이날 오후에는 현대산업개발 광주 현장 사무소와 철거 업체 2곳, 감리 회사 등 총 5곳에 대한 압수 수색도 벌였다. 또 사고 현장과 시내버스 등을 대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경찰은 안전 수칙 준수 여부와 업무상 과실 여부 등에 대해 관련자 조사와 전문 기관 감정 의뢰 등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사고가 난 재개발 사업의 철거 관련, 인허가 과정뿐만 아니라 재개발 사업 추진 전반에서 문제가 없는지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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