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왕이 "한국, 美에 휩쓸리지 말라" 훈계, 왜 이렇게 오만한가

조선일보 2021. 6. 11.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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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조선일보 DB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냉전적 사고에 가득 차 집단 대결을 부추긴다”고 했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공감했는데 “중국은 완강히 반대한다”고도 했다. 한국을 향해 “옳고 그름을 파악해 편향된 장단에 휩쓸려선 안 된다”고 했다. 한국 동맹인 미국의 대외 전략을 우리 외교 장관에게 ‘냉전적’이라고 대놓고 비난하면서 ‘휩쓸리지 말라’고 훈계조로 얘기한 것이다. 정상적 국가 관계에선 할 수 없는 말이다.

외교부는 한·중 장관 통화를 전하며 왕 부장의 이런 발언을 한마디도 옮기지 않았다. ‘한중 관계, 한반도 문제, 국제 정세 등을 논의했다’고 얼버무렸다. 정부는 ‘대만 해협’ 등을 명시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중국 반응에 대해 “이해할 것” “문제없을 것”이라고 해왔다. 그런데 왕이가 “반대한다”고 한 것이다. 중국이 반대한 사실을 감춰야 하는 이유가 뭔가. 외교부는 “시진핑 주석 조기 방한을 위한 소통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 발표에는 없는 내용이다. 정부에 유리한 내용만 발췌해 국민에게 알리는 게 상습적이다.

왕이의 고압적 태도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이 정부는 처음부터 중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줬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앞두고 ‘사드 3불(不)’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했다. 우리 서해를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 공정을 벌여도 성명 하나 없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과 통화해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왕이의 공산당 서열은 25위권 밖인데도 한국에 오면 의전 서열 1·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전 여당 대표, 대통령 측근 등을 줄줄이 만나고 다닌다.

왕이의 ‘냉전’ ‘옳고 그름’ 발언은 11일 개막하는 G7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나왔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구축하려는 반중(反中) 전선에 한국은 동조하지 말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선 민주주의 가치와 열린 사회·경제 등이 강조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압박에 우리 가치와 지향점이 흔들려선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식의 중국의 고압적 태도는 거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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