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과 신호 사이에서 가능성 찾기[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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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해 잠깐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관심을 보인 분들이 많았다.
내가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혈당을 연구하기 시작한 때는 20년 전이다.
당시 나는 포도의 당분을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비파괴 방식으로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 연구를 바탕으로 마이크로파로 DNA를 검출하는 연구를 시도했다.
마이크로파의 특정 주파수와 반응하는 혈당 성분은 농도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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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마이크로파 물리학이다.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1mm에서 1m로 적외선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이자, 와이파이처럼 지구인들이 요즘 끊임없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의 전자기파다. 만약 마이크로파가 눈에 보인다면 마이크로파 신호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상태로 보일 것이다.
내가 마이크로파 공부를 시작한 것은 운명에 가깝다. 처음 시작한 연구는 마이크로파 측정 장치를 개발하는 연구였는데, 그때 측정하려고 했던 것은 우주 잡음 정도의 아주 미약한 마이크로파였다. 낮에는 일상 잡음이 심해 주로 새벽에 실험을 진행했다. 밤을 새워 아침이 찾아오는 새벽, 작은 신호가 나타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렇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순간의 희열이 나를 이 마이크로파 물리학 세계로 이끌었다.
마이크로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숙명처럼 마이크로파를 통해 세상을 보는 연구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두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특정한 일부분의 세계에 불과하다. 바라보는 파장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적외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 X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 마이크로파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분명 다르다.
나에게 제일 흥미로운 세계는 마이크로파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다. 마이크로파라는 특정 파장에 따라 세상의 물질은 각기 다른 반응을 한다. 이런 반응 특성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면, 그 물질의 특성을 밝혀낼 수 있다. 이런 물리학 분야가 바로 분광학 분야다. 분광학은 물질에 의해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을 측정함으로써 물질의 물성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내가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혈당을 연구하기 시작한 때는 20년 전이다. 당시 나는 포도의 당분을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비파괴 방식으로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 연구를 바탕으로 마이크로파로 DNA를 검출하는 연구를 시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 학회에 다녀오다가 당뇨병 환자가 급히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그 피로 혈당을 측정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다.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위생적으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로파 분광학을 이용해, 인간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이크로파의 특정 주파수와 반응하는 혈당 성분은 농도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 반응 정도를 측정하면 혈당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더욱이 고통스럽게 피를 뽑지 않은 상태에서 피부를 통해 측정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혈당과 반응하는 마이크로파 신호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잡음과 같은 신호 속에서 혈당치를 측정하는 기술은 어둠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이처럼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가능성 하나를 찾는 일이 바로 과학이다. 이것이 나의 일이 되다니. 가능성 하나를 믿고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선을 매일매일 지나가고 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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